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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LCK와 챌린저스를 넘나든 '엄티' 엄성현의 4년과 미래

박상진2021-04-28 16:00


LCK 프랜차이즈 도입 후 첫 스플릿이 끝났다. 작년 롤드컵 우승팀인 담원 기아는 아이슬란드로 떠났고, 나머지 팀들은 롤드컵 진출에 중요한 고비인 서머 스플릿을 준비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스프링 최하위인 프레딧 브리온 역시 모든 팀의 1차 목표인 올해 롤드컵 진출을 준비 중이다.

승강제도가 사라졌지만, 스프링 스플릿 하위권 대결 구도는 어느 때보다도 치열했다. 마지막 포스트 시즌 진출팀은 끝까지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숨 막히는 경기가 이어졌고, 프레딧 브리온 역시 그 후보 중 하나였다. 특히 이들은 이번 스프링 LCK에서 이변을 연출하며 리그 구도를 흔들었다.

두 번이나 롤드컵 우승을 경험한 최우범 감독은 시즌을 앞두고 신생팀이나 다름없던 프레딧 브리온을 이끌며 화려한 스타보다는 꾸준히 성장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2014년 삼성 화이트가 롤드컵에서 우승한 후 완전히 새로운 팀을 만들어 3년 만에 다시 팀을 세계 최고로 이끌었던 만큼 최우범 감독의 선수 선택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선수들이 첫 스플릿부터 주목받을 활약을 보인 것.

'엄티' 엄성현 역시 최우범 감독의 새로운 도전과 함께 한 선수다. 진에어 그린윙스에서 데뷔해 kt 롤스터를 거쳐, 챌린저스로 강등된 친정팀을 구하기 위해 다시 2부로 뛰어들었던 엄성현은 올해 다시 1부인 LCK로 올라왔다. 내려가기는 쉬워도 올라오기는 힘든 e스포츠 무대에서 엄성현의 움직임은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진에어 그린윙스가 그래도 작년 챌린저스에서 거의 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는데 저한테만 제의가 왔어요. 마지막 시즌 승강전이 사라졌지만 우리가 잘하면 진에어도 프랜차이즈에 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만 LCK 제의가 왔다는 게 충격이었죠."

LCK에서 데뷔한 엄성현이 챌린저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선택은 엄성현이 kt를 선택했던 2019년으로 올라간다. 진에어 그린윙스에서 kt 롤스터로 이적했던 시기인 것. 당시 kt 롤스터는 직전 시즌 LCK에서 우승했고, 롤드컵에도 진출했기에 엄성현의 자리가 있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특히 '스코어' 고동빈과 같은 포지션이었기에 출전 기회를 잡기 힘든 상황에도 엄성현은 이적을 선택했다.

"시즌 전에는 출전을 거의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출전했죠." 2019년 입단 당시만 하더라도 팀과 2년 계약을 했고, 첫해는 배우는 시기로 생각했지만 팀이 어렵다 보니 분위기 전환을 위해 엄성현의 출전이 많아진 것. "동빈이 형이나 (송)경호 형이 있어서 kt를 선택하기도 했고, 롤드컵에도 갔던 LCK 우승팀이라 배울 게 많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2019년 한 해 배운 게 많았어요. 그리고 그 결과가 올해 나온 거 같았죠. 2020년을 보고 2019년을 투자한 거예요."

하지만 2020년 엄성현은 kt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9년 성적 부진으로 오창종 감독이 물러나고 코칭스태프가 교체되면서 팀 운영 플랜이 바뀐 것. 그리고 새 운영 플랜에 엄성현의 자리는 없었다. 엄성현 역시 미련 없이 kt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진에어를 선택했다. 당시 진에어는 LCK에서 챌린저스로 강등되었고, 새로운 선수진을 구성해야 했다. 당시 진에어를 맡은 천정희 코치가 선택한 정글은 엄성현이었다.
 

"천정희 코치님이 저를 세 번 찾아오셨어요. 흔히 말하는 삼고초려였죠. 아는 분이 이런 모습을 보이니 저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1부에서 2부로 가기는 쉬워도 그 반대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진에어에서 마음도 통했고 게임 내에서 지향성도 같아서 같이 잘 하면 다시 친정팀을 LCK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죠. 챌린저스 시절 가장 아쉬운 게 진에어를 LCK로 복귀시키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엄성현에게 2020년은 단지 잃어버린 1년이 아니었다. kt에서 실력을 갈고닦았다면, 엄성현은 챌린저스 진에어에서 마음을 다스리게 된 시기였다. e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승부욕이지만, 그 승부욕에 스스로를 태워버리지 않을 마음가짐을 얻은 것. "저는 지는 걸 싫어해요. 그리고 가능하면 남이 잘못했다고 하기보다는 거기서 제가 좀 더 잘해야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저를 점점 힘들게 만들더라고요." 

"많이 고민했고, 결국 남의 잘못을 내게 끌고 오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 상황이 아니었으면 배울 수 없던 경험이었죠. 남이 못한 걸 내가 못했다고 하지 말고, 내 할 일이나 잘하자는 생각이죠." 팀을 1부로 복귀시키겠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적어도 엄성현의 2020년은 자신의 내적 성장을 이룰 수 있던 한 해가 되었다. 또한 엄성현은 이 시기에 팀을 이끄는 주장으로의 경험도 쌓았다.
 

그리고 엄성현은 2021년 다시 LCK에 복귀했다. 프레딧 브리온 지휘봉을 잡은 최우범 감독이 먼저 엄성현에게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고, 최우범 감독의 계획을 들은 엄성현 역시 테스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 합류가 결정됐다. "2020년 시즌이 끝나고 실망이나 낙담보다는 빨리 솔로 랭크 성적을 끌어올려 제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죠. 그러다 최우범 감독님 제안이 왔고, 저 역시 제 상황을 알고 있었는데다 감독님의 앞으로의 계획까지 듣고 프레딧 브리온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팀 외적으로 제가 리더라는 이미지도 있고 팀 내에서도 주장 포지션을 기대해서 일단 주장도 맡게 됐죠. 챌린저스 진에어 시절이 제게 의미 없던 시절이 아닌 이유입니다."

최우범 감독이 전 소속시절 선수들에게 떨쳤던 명성이 있기에 이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엄성현은 의외의 대답을 들려줬다. 오히려 좀 더 강하게 나와줬으면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감독님의 빙산의 일각만 본 거 같아요. 젠지에 있는 재혁이 형이나 다른 선수들이 아직 '너희는 진짜 감독님 맛을 못 봤다'고 해요. 그리고 저나 다른 선수들 모두 성장해야 하는 단계라 더 강하게 키워주셔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은 하는데. 물론 지금 감독님도 충분히 좋아요."

진에어 시절 선수로 함께 했던 '레이스' 권지민 역시 코치로 다시 만나게 됐다. 한때 LCK 미남으로 알려졌던 권지민의 최근 변화에 대해서 엄성현의 설명은 이렇다. "지민이 형이, 이제는 코치님이죠. 코치님이 1년 반 동안 집에서 거의 안 나오면서 맨날 게임만 하고 인스턴트 음식만 먹고 하니 저렇게 변하더라고요. 하지만 처음 봤을 때는 이게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은 정도였어요. 그래도 관리 좀 하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엄성현이 합류한 프레딧 브리온은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아무도 이 팀을 최하위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작년 롤드컵 우승 팀인 담원을 2대 0으로 잡고, 한 수 위 전력으로 평가된 팀들을 잡아내며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담원전 승리는 2021 LCK 스프링 스플릿에서 가장 큰 이변으로 기록될 정도였다.

"감독님이 담원 기아전을 앞두고 해줬던 이야기가 있었고, 특히 2세트에서는 상대의 심리를 읽어냈던 게 도움이 됐어요." 1라운드 담원전 1세트는 팀의 경기력이 상대에 앞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다음 세트에서는 심리전 단계에서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롤드컵 우승팀이 최하위 예정팀에게 한 세트를 내줬으니, 다음 세트에서는 아예 숨 쉴 여유조차 주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죠. 하던대로 하면 절대 이기지 못하고 3세트도 허무하게 내줄 거 같아서 그럴 바에는 내가 뭔가 해보자는 생각에 초반부터 변수를 만들었어요. 2레벨에 미드를 지나간 플레이가 시작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이러한 과감함의 바탕은 담원전 이후 인터뷰에서 말한 '갈때까지 간 선수들이 모인 팀'이라는 절박함, 그리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있었다고. "우리는 지는 게 두렵지 않아요. 패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게 정말 두려운 거죠. 저는 정말 지는 걸 싫어해서 이러한 마음가짐을 배우는 중이었고, 담원전 승리와 전체적인 이번 스프링에서 마음가짐을 익히고 있어요. 우리는 패배가 두려운 게 아니라 성장하지 못하는 게 싫은 거라고."

말은 이렇게 해도 마지막 순간 승리를 쌓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은 듯했다. 6위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프레딧 브리온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의 가능성이 열렸지만, 결국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성현이 지기 싫어하는 kt도, 담원 기아만큼이나 높은 벽이었던 던 T1도, 순위 싸움 라이벌인 아프리카 프릭스도 잡아냈고, 젠지 e스포츠에게는 한 세트를 따냈고, 다시 만난 담원 기아에게는 0대 2로 패배했지만 치열한 접전을 보였기 때문이다. 엄성현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스타일이 파악됐고, 그에 따라 변화해야 했는데 그 방법을 찾아가던 상황에서 포스트 시즌 진출 시기가 맞물린 거죠. 모두가 막판에 방향성을 잡지 못했어요. 그러던 사이에 아쉬운 패배가 쌓였고 결과가 나왔죠.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 않은 이유는 패배 과정에서 우리가 서머에 어떻게 해야 할지 경험을 쌓았다는 거에요." 스프링보다 중요한 서머에서 승부수를 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엄성현은 자신에 대해서 '불만족'이라는 성적을 매겼다. "2017년에 데뷔해서 4년 차를 맞았는데 포스트시즌, 혹은 승격 기회가 와도 이걸 붙잡지를 못했어요. 기회를 붙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고 불만이죠. 서머에서는 꼭 포스트 시즌에 올라서 다전제 경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상대에게 다크호스가 아닌 진짜 무서운 팀이 되어보고도 싶고요."

4년동안 e스포츠 선수로 살아온 엄성현은 가장 장수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고. '스코어' 고동빈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선수 생활 목표를 전한 엄성현은 선수 이후의 계획도 마음에 두고 있다. 개인 방송에서도 단순히 게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시청자에게 자신이 왜 이런 플레이를 보였는지 설명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엄성현은 기회가 되면 게임이나 리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에도 올라보고 싶다고. 특히 엄성현이 생각한 치열한 하위권 구도는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선수들에게 부담은 덜해요. 진에어 시절 한상용 감독님은 승강전 위기가 올 때마다 '여기서 지면 한 달 더 해야 한다'고 말했거든요. 잔류 여부를 떠나 경기를 더 해야 하는 건 분명 부담이었죠. 그런 부담이 사라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하위팀 선수들이 나태해질 수는 없어요. 이기고 싶지 않은 선수는 LCK에서 살아남을 수 없거든요. 다만 당장 올해는 하위권 경기력이 예전보다 아쉬울 수 있지만, 2년만 지나도 이 팀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올 거로 예상합니다. DRX나 농심 레드포스 같은 팀들의 예도 있고, T1의 신인들만 봐도 이제는 새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니까요."
 

엄성현의 이러한 모습은 아직 이르지만 선수 이후의 모습도 기대할만 했다. 물론 엄성현은 선수로서 목표가 가장 장수하는 선수로 남는 것이기에 정말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이 다음의 일도 생각해고 있다고. "이번 LCK 결승 영문 중계 패널로 참여했을때 준비를 했는데, 준비를 한 만큼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게임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영어가 좀 아쉬웠어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고, e스포츠 선수로 충분한 성적을 낸 후 진지하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LCK에서 계속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엄성현은 인터뷰를 마치며 2년동안 만나지 못한 팬들에 대한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사인도 안 해서 하는 법을 잃어버렸을 정도. "팬들 앞에서 인사도, 팬미팅도, 사인도 해야 하는데 하루빨리 상황이 좋아져 다시 경기장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저도 그때까지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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