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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K] 성공한 실험의 조건, 그리고 믿음의 시간

박상진2021-03-14 10:13


T1이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뒀다. 특히 그 상대는 젠지 e스포츠였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예상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13일 2020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스플릿 2라운드 경기에서 T1이 젠지 e스포츠를 세트 스코어 2대 0으로 꺾고 승리했다. 이날 T1은 2020년 주전 멤버였던 '칸나' 김창동-'커즈' 문우찬-'페이커' 이상혁-'테디' 박진성과 함께 올해 영입한 '케리아' 류민석을 기용했고, 올해 처음으로 시원한 경기력을 보이며 승리한 것.

이 경기를 앞두고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경기라고 평했다. 전체적인 플레이오프 구도를 놓고 보자면 이 경기는 크게 중요한 경기는 아니다. 물론 젠지 입장에서는 2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4강 직행 시드권이 위태하게 되었으니 중요한 경기가 되어버렸다. T1 역시 이 경기에서 진다고 해도 플레이오프 진출이 위험하지는 않았으니 중요하지 않은 경기였지만, 이 경기는 중요한 경기가 되어버렸다.

젠지전 직전까지 T1은 7승 7패를 거뒀다. 7승을 거둔 상대는 순서대로 한화생명 e스포츠-리브 샌드박스-농심 레드포스-프레딧 브리온-리브 샌드박스-농심 레드포스-kt 롤스터다. 패한 상대는 담원 기아-젠지 e스포츠-kt 롤스터-아프리카 프릭스-DRX-담원 기아-프레딧 브리온 순서다.

강팀은 질 팀한테 이기는팀이고, 중위권 팀은 이길팀에게 이기는 팀이고, 약팀은 이길 팀에도 지는 팀이다. 이 방식대로라는 T1은 중위권 팀이다. 물론 이길 만한 팀에게 진 경기도 있었으니 약간 약팀 쪽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T1은 젠지전 승리로 올해 처음으로 질 팀에게 이긴 것.

T1이 중요하지 않은 경기를 중요하게 만든 이유는 또 있다. 개막 이후 계속 자리잡지 못한 선발 라인업에 작년 주전들을 내세워 시원하게 승리를 거둔 것. 올해 팬들이 게임단에 보낸 가장 큰 원성 중 하나가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에 계속 바뀐 선발 라인업이었다. 물론 이런 선발 교체가 나쁜 영향만 있던 것은 아니다. 젠지전에서 대활약한 '칸나' 김창동은 이날 41일만에 경기에 출전했고, 마지막 선발 출전 당시에는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온갖 비난을 들었다. 만약 다른 탑 라이너가 없었으면 김창동은 계속 좋지 않은 경기력으로 자신과 팀, 그리고 팬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커즈' 문우찬 역시 휴식기가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경기를 중요하게 만든 T1은 이제 남은 경기까지 모두 중요해졌다. 젠지전 결과만 놓고 보자면 T1의 남은 상대인 DRX와 아프리카, 그리고 한화생명 모두 이길만한 팀이기 때문이다. 11승 7패로 스프링 스플릿을 마무리한다면 2021년 T1의 스프링 정규 경기는 결과만 놓고 보자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을 했다고 평할 수 있다. 완전히 무너질 뻔한 탑 라이너에게 시간을 줘서 다시 경기력을 살려냈고, T1의 장점인 팜 시스템에서 배출한 선수들의 실제 1군 경기력도 충분히 점검할 수 있었으니까.

양대인 감독의 실험이 성공으로 남으려면 이제는 자신이 아닌 선수들을 믿어야 할 시간이다. 한 경기만으로 평하기는 힘들지만 젠지전에서 김창동은 2020년의 모습을 되찾았고, 문우찬은 실수는 있었지만 '클리드' 김태민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상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이상혁은 빛나지는 않지만 협곡에 서 있는 그 자체만으로 아군에게는 힘이, 상대에게는 부담이 되었고 실제 플레이에서도 중요한 장면을 연달아 만들어내며 베테랑이 무엇인지 모두에게 보였다. 박진성 역시 젠지의 중심인 '룰러' 박재혁을 상대로 자비없이 화력을 뿜어냈고, 류민석은 본인이 무리하지 않아도 될 경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3경기 남았고, 플레이오프가 곧 시작이다. T1이 플레이오프 4강 직행할 확률이 없지는 않지만 없다고 봐야 하고, 스프링 우승까지는 6경기가 남은 셈이다. 양대인 감독은 스프링에서 3위나 4위가 목표라고 했지만, 적어도 T1 선수라면 저 목표를 그대로 받아들일 선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모든 팀 선수들은 우승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승이 목표라고 말한다. 실험이 없으면 발전도 없고, 그렇기에 양대인 감독이 도전이 의미가 없지 않다. 그 실험의 결과로 돌고돌아 2020년 주전 선수들을 기용해 젠지전 승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보고, 이제는 그 결과를 들고 선수들을 믿어야 하는 상황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구조상 유망주들에게 실전 경험을 줄 수 있는 것은 스프링 초중반 뿐이다. 양대인 감독이 말한 실험의 목적이 이것이라면 나는 충분히 그의 생각을 납득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유망주가 주축이 될 T1이라면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그간 양대인 감독에 대한 많은 기사가 있었지만, 내가 여태까지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다. 다만 이 실험은 주전들의 경기력과 팀 전체 성적에 무리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 주전 선수들은 어제 경기로 양대인 감독의 방향이 아직은 틀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양대인 감독은 잘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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