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 84와 소재로서의 페미니즘 그리고 윤리

  • 김민호
  • 등록일 2020-08-20 21:44
  • 조회수 4,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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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 84와 소재로서의 페미니즘 그리고 윤리

 

한때 프로젝트 런웨이라는 프로그램을 미국버전과 한국버전까지 정말 열심히 다 봤다. 짧은 시간 동안 디자이너들이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옷을 만들어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제작진은 그들에게 철물점이나 슈퍼마켓에서 30분 동안 재료를 구하라고 하거나 쓰레기를 던져주며 옷을 만들라는 미션을 내밀곤 했다. 사람은 도무지 가능할 거 같지 않은 제한 상태에서도 돌파구를 찾아내거나 실패한다는 걸, 그 과정이 누적될 때 반짝이는 결과물을 만들어간다는 걸, 그리고 그 결과물이 실용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싶다면 프로젝트 런웨이를 다시 보면 된다. 



디자이너나 작품을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어차피 실생활에서는 입지도 못할 말도 안 되는 옷 하나에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태도를 보이고, 크리틱은 냉혹하면서도 정확하다. 때론 하나의 디테일이 작품의 모든 걸 망치기도 했고 때론 그 디테일을 조화시키는 다른 요소들로 작품이 가진 문제가 상쇄되기도 했다. 자기 확신으로 일해온 디자이너들은 작은 평가에도 흔들리거나, 크리틱도 전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미리부터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전문가들의 정확한 비판을 고통스럽고 진지하게 재고해가며 매 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도 안 되는 옷들을 만들던 그들 중 몇몇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의류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니까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예술에 있어 소재는 많은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에서 중요한 건 한정된 조건에서의 재현의 방식과 차원, 그리고 그걸 도와주는 정확한 크리틱이다. 그게 아무리 저들끼리의 싸움같거나, 무용하고 거리가 멀어보여도, 다름 아닌 현실로 제대로 들어오기 위해 하나의 문제는 디테일부터 복합적인 요소까지 진지하게 말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소재가 재현의 차원이나 크리틱을 자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느낀다. 좋은 예가 기안 84다. 



방금까지 작가인 친구와 한참 대화했다. 그는 래퍼 슬릭이 욕을 먹는다고 했다. 아니 나의 천사 순두부에게 그게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페미니스트 래퍼를 자처하는 주제에 랩도 못한다고 윤미래와 비교 당한다는 거였다. 슬릭을 비판하는 이들은 윤미래를 예를 들며 그가 여자 래퍼이기 이전에 윤미래라는 장르를 썼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친구는 그게 바로 문제라고 했다. 가령 흑인 여성 작가 작품은 흑인 여성의 페미니즘 작품이지 미학적 역사적 해석까지 가지 않고 하나의 분류에서 끝나버리는 일이 많았다. 친구는 디아스포라 작업 역시도 재현방식에 대해 논의 되기보다는 소재로 비난받거나 소재로 그냥 전시장에 놓인다며 고뇌했다.



나로서도 그런 걸 짚는 일이 왜 자꾸 윤리적으로 겨냥되는지 정말 고민하던 중이었다. 흑인 여성 작가가 만일 정말로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 재현의 방식에 대해 논의 하지 않는 게, 그냥 작업을 하는 행위나 자신이라는 소재만이 긍정되는 게 좋을 리가 없다. 물론 비평적이고 첨예한 언어가 누군가에게 배부른 소리가 되거나 어떤 권위로만 작용할 수 있는 위험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하지만 나로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역시 더 많은 물음으로 경계되어야 할 뿐, 윤리적 난제를 가진 조건 하나로 예술의 옳고 그름이 갈린다면 그거야말로 예술 자체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고 느껴졌다. 예술은 내게 언제나 구리고 말고의 문제였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소녀상이나 박근혜 누드 오마주 등이 탄생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몇몇 페미니즘적 글쓰기도 그렇게 느껴졌다. 여성이 받았던 피해사실의 공유나 가해자의 잘못을 밝히는 건 정말 중요하지만, 점차 고통의 투명함이나 가해자에 대한 분노만이 그 글을 판가름하는 소재이자 좋은 글의 조건이 되는 걸 자주 목도했기 때문이다.



모든 창작자는 예술에 어떻게든 속해있다고 본다면. 어떤 날은 그런 예술-글이 어쨌거나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는 점에서 재현적 차원의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날은 도대체 그런 예술이 여성이나 약자의 현실에 어떤 식으로 도움을 주는가 생각했다. 어떤 날은 이런 내 마음에 회의가 들어 나는 역시 부르주아거나 부르주아를 흉내내고 싶은 여자인가보다 싶어 좌절했고, 어떤 날은 도대체 이마저도 말하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반지성주의가 아닌가 싶어 슬퍼졌다.



 대중이 멍청하다는 말에 동의 못하면서도 나는 대중이 똑똑하다고도 말하지 못한다. 똑똑한 개인마저 집단이 될 때 이상해지는 걸 너무 많이 봐버린 탓이다. 그러나 나는 대중이 예민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나는 대중을 믿는다. 기안84의 말도 안 되는 표현에 이미 많은 대중들은 별점 등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이전보다 높아진 성인지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성찰하지 않는 작가는 도태된다. 심지어 어디하나 미워할 곳 없는 펭수라는 캐릭터마저도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콘텐츠의 세계는 참 가혹해 나는 기안이 재현윤리 부분을 성찰하지 않는 한 그의 웹툰 속 지위도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었다. 동시에 기안에게 향해지는 소위 스피커들의 피드백 역시 열심히 보았다. 피드백이 정확할수록 웹툰의 창작자들은 기안을 필두로 재현 부분에서 더 신경을 쓸테고 그런 식으로 현실과 문화의 질이 나아질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몇몇 발언권을 가진 이들이 기안이 끝날 이유를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그를 끝장내야하는 당위를 말하는 것에 적잖게 당황했다. 



 윤리는 고정되지 않고, 예술은 윤리의 유동성을 드러내거나 경계를 고민하게 한다. 내가 페미니스트라도 그 점은 같다. 그니까 나는 기안84가 윤리적으로 나쁜 표현을 쓴 나쁜 인간이기 때문에 웹툰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기안이 나쁘다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나쁜지, 창작자의 재현윤리는 무엇인지 디테일하게 짚어낸 글을 보고 싶었다. 나보다 더 잘 아는 분들이 첨예하게 웹툰시장의 거대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길 바랐고, 시스템을 바꾸라고 하는 동시에 시스템이 한 가지 이유로 작가를 쳐내는 선례가 일어날 때 앞으로 다른 작가들에게 어떤 여파가 일어날 수 있는지, 그것이 앞으로의 예술을 어떻게 침해할 수 있는지, 그 경우 표현의 자유는 어떤 식으로 다루어져야하는지 이야기되기를 바랐다. 더 많은 물음이 기안84를 필두로 일어나길 바랐다. 그 뿐이다. 그러니 나는 기안을 끝장내야한다는 논조를 숨기거나 드러낸 소위 지성의 언어를 볼 때마다, 그것이 페미니즘으로 향해있을 때마다, 왜 그가 분노의 소재로만 쓰이는지, 왜 첨예해야 하는 이들에게서조차 다양한 논의가 나오지 않는지, 어떻게 안희정 지지자의 해악과 기안84의 해악이 같은 것이 되는지 어리둥절해졌다. 그런걸 짚는 일은 윤리적으로 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곤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디테일 할수록, 현실과 멀어보인다는 이유로 뭉뚱그리지 않을수록 여성의 현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크리틱으로 잘 다듬어진 예술은 이전의 고정되어있던 윤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교정되어야하는지 세상에 묻는 식으로 페미니즘을 확장시켜왔기 때문이다.



장파 작가는 SEMINAR에 <미술관을 떠도는 페미니즘>이라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 훌륭한 이 글의 초입은 어느 순간 페미니즘은 ‘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 거기에는 여러 함의가 담겨있다고 말하며 시작된다. 이어 그는 페미니즘적 주제나 소재를 다루는 전시나 작업이 정치적으로는 올바르나 미학적인 것에서는 결여되었음을 느낄 때가 있다고, 미적 태만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이 소재가 된 글에 눌리는 좋아요에서도 나는 같은 맥락을 느낀다. 기안84의 언행이 문제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로 보이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빌려, 기안84에 대한 몇몇 평가- 특히 지금 가장 핫한 윤리 기준만을 필두로 그를 단죄하려는 '되는 글'에서는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거기엔 디테일도 다층적 평가도, 아래와 같은 물음도 부재한건 아닐까.



장파는 묻는다. ‘하지만 이러한 섹슈얼리티 안에서의 위계, 혹은 섹슈얼리티 자체를 다루는 작업이 미술에서 ‘표현’ 됐을 때, 지금 여기 한국에서는 어떠한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여성 혹은 퀴어한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것이 이미 낡아버린 주제를 다루는 ‘소재주의’로 치부되어 다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범주 자체의 폭력성보다 이미지와 소재의 과격함을 바로 공격성 혹은 폭력성으로 연결지어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불편한 감각들’에 대해 우리는 실제 얼마나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또한, 그것과 자신을 얼마나 분리하려 하는가? 과연 ‘젠더 수행성’은 3세대 페미니즘 이론이고, 여성성 혹은 섹슈얼리티 자체를 다루면 과거의 페미니즘 이론에 갇혀 소재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인가? 이같이 거친 질문들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감각 체계가 과연 어디에 혹은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묻기 위해서이다. 각기 다른 시차에서 페미니즘·퀴어·젠더·섹슈얼리티를 인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떠한 감각을 느끼고 미끄러지며, 어떤 것을 가시화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 시차는 극복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감각들은 말해질 수 있을까?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다시 ‘성공’이 논의되는 이 현실에서, 과거 여성의 성공 담론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되새김을 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페미니즘 이슈를 조직화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는가?“ 



이런 첨예한 물음을 모두 할 수는 없다고도, 모두 해야하는 게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 물음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서마저 이것이 결여된 것은 아닌가, 더 정확하려는 그런 물음들이 어떤 답이나 분노보다도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면 통쾌하고 속 시원하게 읽었던 글에서도 괜히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소재나 의도가 무작정 결과물의 긍정을 담보한다면, 소재의 개선이 아닌 하나의 장르가 되려는 개인의 욕구와 밀접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렇게 개인으로 대체되는 장르란 폐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통쾌함만큼이나 그 두려움 역시 중요하다고 믿는다. 



정신없는 시기 나와 너의 윤리는 같지 않다는 걸 새삼 체감한다. 엊그제 광화문에 나간 이들과 나의 윤리는 결코 같지 않을 것이고, 실은 윤리가 같건 말건 우리는 서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제는 분노의 소재를 찾기 위해 온라인을 내내 헤매었다. 누구라도 눈앞에 불러둔 채 물건을 부수고 고함치고 때리고 단죄하고 싶은 기분으로 기사를 읽었다. 가끔은 정확한 비판이고 나발이고 힘에 부치고, 나는 이 거지 같은 삶에서 항상 나와 상대의 윤리가 같도록 강요하고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내 윤리가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모두가 같은 윤리를 가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면 어지러운 마음이 들었다. 광화문의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묻는 글들을, 그렇게 함으로서 정확하게 비판하려는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정당한 분노만큼이나 꼭 필요한 글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기안 84를 둘러싼 논란을 다시 끌어와본다. 정작 기안84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새벽 친구와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드는 생각을 후다닥 잊지않게 적어내렸다. 내일 아침이면 이 글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내글보다 백번 나을 장파 작가의 글 링크를 댓글에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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