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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채정원, 스타2, GSL, 10년

박상진2020-04-10 10:40


누구나 인생에 전환점이라는 것이 있다. 나 역시 게임, 그리고 e스포츠와는 전혀상관 없는 대학원생이었지만 지금은 e스포츠 기자 일을 하고 있다. 그 전환점은 스타크래프트2였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PC방에 다니며 스타크래프트1을 했지만 정말 못하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잘해보자는 생각에 잡은 스타크래프트2가 삶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바꿨다.

게임, 스타크래프트2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나뿐만 아니다. 지금이야 실시간 전략 장르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적어도 10년 전에는 e스포츠는 곧 스타크래프트를 위시한 실시간 전략 장르 게임이었다. 많은 사람이 스타크래프트를 만나 예상치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채박사, 채팀장, 그리고 이제 흔히 채본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TV 채정원 본부장 역시 마찬가지다. 전역 후 스타크래프트 해설에 도전했지만 스타크래프트2와 GSL 런칭 이후 해설과 운영을 겸했고, 10년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초창기 프로게이머가 아닌 e스포츠 운영의 중심에 서 있다. 10년 동안 GSL과 함께한 그에게 그동안은 물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2와 GSL이 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2020 GSL 시즌을 맞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GSL이 처음 시작된 지 10년이 됐습니다. 처음부터 같이 해오셨던지라 소감이 남다를 거 같네요
그동안 함께 한 시간이 잊혀지지 않네요. GSL을 처음 발표하고 오픈시즌 계획을 공개하고 신청을 받자 2천 명 가까이 도전해서 밤새 대진표를 짜던 기억도 납니다. 밤새 스태프들과 일을 했었죠. 10년이라는 시간만큼 그동안 일도 많았습니다. 중간에 정치적인 일로 힘들었던 적도 있고, 해설과 운영을 겸하다 결국 운영에만 전념하고 회사를 옮긴 적도 있죠. 하지만 10년 동안 언제나 GSL과 함께 한 거 같습니다. 단일 리그를 10년 동안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동안 함께 해온 스태프분들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야기 한 대로 많은 일을 겪었는데, 처음에는 해설로 곰TV에 합류해 해설로 시작했죠. 이후에 GSL부터 운영에 나섰는데, 어떻게 GSL과 인연을 맺게 됐나요
처음에는 곰TV 프리랜서 해설이었죠. 예전부터 스타크래프트 해설을 하고 싶었고, 전역하자마자 자리를 찾아봤는데 온게임넷(현 OGN)에서 해설할 여건이 안되어서 곰TV에서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GSL 발표 이전에는 그냥 프리랜서 해설자였어요. 스타크래프트2 리그 콘텐츠 발표 이후부터 GSL 운영에 관여했습니다. 그때 같이 일하던 분이 곰TV 배인식 대표님과 오주양 상무님, 그리고 제가 팀장이 됐고 지금도 GSL에서 일하시는 조인화 작가님이죠. 기존에 있던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협회가 있고 협회에 소속된 팀이 있고, 다시 팀에 소속된 선수가 있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2 리그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리그를 만들고 싶었고, 많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실행력이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그게 가능한 사람이 저라고 생각했는지 제안이 왔어요. 당시에 해설도 잘하고 있었고 스타크래프트2도 재미있게 하던 시절이라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직장인 생활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제의를 승락했습니다. 3년만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벌써 10년이네요. 그런데 주위에서 잘나가는 프리랜서 생활 그만두고 왜 직장인이 됐냐고 하는 걱정이 많았어요. 입사 후 인사를 다닐 때도 왜 여기 들어왔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결과로만 보자면 들어와서 정말 잘됐네요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죠. 회사에 처음 들어와서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더라고요. 리그가 출범하고 성장하고, 팬과 선수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리그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할 일이 정말 많았고, 생각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새로 시작하는 리그인 만큼 고민할 부분이 정말 많았을 거 같습니다. 오픈 시즌부터 시작해 Code S와 Code A로 구성된 리그 방식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고안했나요
처음 시작하는 리그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리그 초창기 구조의 핵심이었습니다. 자격에 상관없이 게임을 잘하면 예선을 뚫고 올라가 본선에서 경기할 수 있으니 누구나 오라는 거죠. 그것도 정해진 숫자가 아니라 예선은 신청 제한 없이 많이 받았고, 2천명 가까운 사람이 참가를 신청했죠. 덕분에 운영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수도 가능한 많이 잡았죠. 처음 나온 게임이고, 정말 오랜만에 나온 새로운 RTS e스포츠 경기였으니까요. 그래서 오픈시즌 이후에는 정말 잘하는 선수들이 올라오는 Code S와 가능성을 가진 선수들이 도전하는 Code A 두 개 리그를 구성해 운영했습니다. Code S는 정말 게임을 잘하고 인정받는 선수들이, Code A는 자신을 노출할 수는 있지만 계속 노력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었죠.

오픈시즌 생각하니 생각나는 선수가 조성주입니다. 스타크래프트2 초창기부터 활동해서 지금은 스타크래프트2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는데, 함께한 시간만큼 이 선수를 보면 느낌이 다르실 거 같네요
조성주가 오픈시즌1부터 도전했어요. 아마 첫 경기에서 '셀라웨라' 아이디를 쓰는 홍승표에게 졌죠. 완전 어릴 때 삼촌과 같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정말 결승에 자주 가는 선수로 성장했죠. 결승마다 삼촌분이 오시는데, 항상 오픈시즌에 왔던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결승 이야기하니 GSL 초창기에는 스코어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죠
그렇죠. GSL을 출범시키고 3년까지 결승 스코어가 계속 일방적이었습니다. 4대 0 아니면 4대 1. 당시 스태프들이 자주 모여서 하던 이야기가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거 하나가 결승이다"는 거예요. 나머지는 스태프들이 열심히 일하면 만들 수 있는데 결승 스코어는 생각대로 안 된다고. 결승전은 돈도 공도 노력도 팬들도 다 많았는데 스코어만 아쉬웠어요. 하지만 그건 어쩔수 없는 부분이죠.

이야기하다 생각난 건데 초창기에는 GSL에 아이유도 함께했어요. 아이디 콜도 해주고, 블리자드 컵에서는 공연도 했죠. 덕분에 아이유를 실제로 처음 볼 수 있었습니다
GSL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아이디 콜인데, 당시에는 사람들이 엄청 비웃었어요. 대체 이걸 왜 하냐고. 그런데 지금 아이디 콜 없으면 허전하잖아요. 해외 대회에서도 아이디 콜이 따로 안 되면 해설들이 해주고. 당시 이걸 제안한 게 오승민 PD인데, GSL 4부스도 제안했던 사람이에요. 덕분에 많은 경기를 세팅 시간 없이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죠. 

아이디 콜이나 4부스 등 GSL이 당시 해외 스타크래프트2 대회에 많은 영향을 줬죠. 한국 선수들도 해외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냈으니 대회 운영 입장에서 자부심이 넘치셨을 거 같네요
그렇죠. 특히 제대로 된 글로벌 e스포츠는 GSL이 처음이라는 점도 마찬가지예요. 스타크래프트1은 정말 흥행한 e스포츠였지만 글로벌로 성장하지는 못했으니까요. 반면 GSL을 위해 해설자도, 선수도, 팬들도 한국으로 몰려들었고 반대로 GSL도 애너하임이나 라스베가스에서 결승을 치르기도 했죠. 한국 반응도 좋았지만, 해외 반응도 그 이상으로 좋았기에 하나의 e스포츠 리그가 전 세계에 영향을 준 건 GSL이 최초라고 생각합니다. 트위치도 GSL과 함께 성장했죠.

특히 미국 애너하임 블리즈컨 현장에서 열린 문성원 대 정종현의 GSL 결승은 엄청났던 거로 기억합니다. 만 오천명 정도가 현장에서 결승을 지켜봤었죠. 경기장에서 엄청난 열기를 직접 느끼셨을 텐데,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GSL 결승을 블리즈컨에서 하기로 결정된 게 좀 늦은 시기의 일이라 이미 짜여있는 행사 계획표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순서에 GSL 결승이 배치됐고, 늦은 시간까지 현장에서 경기를 볼지 걱정했는데 다들 남아서 결승을 봤죠. 당시 블리즈컨은 네 개 정도의 세션에서 디아블로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2 등 게임 체험이나 설명이 진행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모든 행사가 종료되고 나니 모든 세션에서 GSL 결승을 보여줬죠. 그리고 현장에 온 사람들이 전부 남아서 결승을 본 거예요. 블리즈컨 오프닝 키노트 빼고 모든 곳에서 같은 현장을 보여준 건 GSL 결승이 유일했을 거예요. 문성원이 우승하고 다들 MMA를 외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마지막 순서로 GSL 결승을 한 건 정말 잘했던 결정 같아요.
 

팀 리그인 GSTL도 해외에서 결승을 진행했고 반응도 좋았죠. 개인 리그 뿐만아니라 팀 리그를 같이 운영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 같은데, 팀 리그는 어떻게 운영하게 됐나요
팬들의 요구도 있었지만 팀들의 요구도 그만큼 컸어요. 개인 리그를 열다 보니 팀도 생겼고, 팀리그에 대한 니즈도 있어서 팀 리그인 GSTL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어떤 팀을 참여시킬지도 고민했죠. 그래서 8팀을 선발하기로 했고 소속된 선수들의 개인 성적을 기준으로 참가 팀을 결정했습니다.

리그 운영을 하면서 많은 것을 결정해야 했는데 선수와 선수, 그리고 팀과 선수, 팀과 팀 사이의 분쟁을 조정해야 하기도 했죠. 그래서 e스포츠연맹이라는 단체도 생겼고요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결국 직접 결정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죠. 팀들도 각자 사정이 있고, 서로의 이익이 부딪히고 외부에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e스포츠연맹은 팀들의 요구로 만들었어요. 판이 커지고 팀이 성장하는 관계에서 선수 계약이나 이적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그걸 중재할 곳이 필요했으니까요.

2012년 초반 결승 두 번은 정말 성공한 모습을 보였는데, 시즌3이 다들 아는 해운대에서 결승한 그 시즌이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을 거 같은데, 지금은 뭔가 하실 이야기가 있을 듯합니다
제가 그 이후로 정우성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꼭 극장에서 다 봅니다. 정말 죄송한 순간이었어요. 순전히 우리 과욕이었거든요. 시기도 아쉬웠던 게 8월 첫 주에 모두가 휴가를 가는 그 시기를 잡았어야 했는데, 부산에서 하는 축제에 GSL 결승이 포함되는 바람에 7월 마지막 주에 갔어요. 한 주 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얼마 없더라고요. 그리고 좌석도 예전 광안리 생각을 하고 8천 개를 준비했는데 온 거는 천 명 정도였거든요. 거기다 더운 야외에서 행사를 진행하느라 해설진도 스태프도 다들 엄청 고생했죠.
 

그래도 2012년은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고, 스튜디오도 신정동에서 삼성동 현 프릭업 스튜디오 자리로 옮겼습니다. 새 경기장을 이곳으로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GSL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얼마나 성장할지 가늠할 수 없어서 작은 곳에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팬들 찾아와서 팀 리그에서 선수 대기석으로 사용하던 공간까지 좌석으로 활용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스튜디오를 옮길 계획은 일찌감치 잡았는데 장소가 마땅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이 흘렀고, 이곳을 찾아내서 e스포츠 스튜디오로 사용하게 됐습니다.

새 스튜디오도 정했는데, 2013년은 새로운 시스템 안에서 경쟁을 하게 됐죠. 스타크래프트2 비전 선포식 이후 리그 공동 중계라는 방식이 시행됐고, 지역 락으로 한국 선수들의 해외 활동도 제한됐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아쉬운 순간도 많았을 거 같습니다
섭섭한 일이 많았죠. 한국에서 아무 기반도 없던 스타크래프트2 시장에서 우리가 시작해서 여기까지 만들어 왔는데, 다른 시스템에 맞춰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블리자드는 IP소유사에 그동안의 투자 등 모습을 보여 권리를 존중하기로 했죠. 다들 목표는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2가 성공하는 거였으니까요. 다만 그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고 봐요. 블리자드의 생각은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2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송사에서도 리그가 송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세계적으로 다른 지역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보호 장치가 필요했다고 생각한 거죠. 블리자드의 선택이 아쉬웠지만 따라야 했죠. 권리를 가진 사람의 결정을 존중해야 했으니까요.
 

정말 말이 많았고, 제 생각으로 결정적인 실책이었다고 보는 지역 락에 대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안 하는 게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WCS 글로벌 파이널 때문에 지역 락 이야기가 나왔는데, 처음부터 한국 선수 8명과 해외 선수 8명을 따로 선발에 글로벌 파이널에 초청하는 게 나았다고 보거든요. 블리자드 입장에서 보면 WCS 아메리카나 유럽의 흥행을 위해서도 지역 락을 선택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기존 단독으로 진행하던 한국 스타크래프트2 리그도 WCS 코리아 체제에서 GSL과 스타리그가 번갈아 가며 열리게 됐죠. 당시 같이 해설하던 박상현 캐스터와 안준영 해설과 함께한 인터뷰에서 삼성과 소니에 비유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던 거도 기억합니다. 사실 WCS 이전 곰TV에서 해외 GSL 구독료로 회사 수익도 개선했는데, 다 만들어 놓은 판을 넘겨준 입장이었죠
당시에 방송하면서 저도 아쉬움에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도 이것도 스타크래프트2 기반을 넓히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블리자드와 OGN도 마찬가지 목적이었을 거로 생각해요. 다만 이 방식이 잘 안됐을 때 대비책도 준비해야 했는데 그게 없었어요. 그리고 결국 잘 안됐죠. 제 예상으로도 이 시스템은 1년 정도 후에 문제가 될 거 같았는데 그 전에 문제가 생겼으니까요. 당시로 돌아간다면 블리자드를 더 설득했을 거 같습니다.

언급한 대로 2013 WCS 코리아 시즌1은 GSL이, 시즌2는 스타리그가 진행됐고 서로 타 방송사 리그를 중계했죠. 그런데 시즌3에서는 OGN에 빠지면서 결국 GSL만 남았어요
제 생각보다 더 빨리 그만둬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최소한 1년에서 2년 정도는 할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각자 회사의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 편성 방침은 존중해야죠. 다만 당시 스타크래프트2 팬들의 상처가 컸을 거예요. 이제 두 방송사에서 리그를 여니까 많이들 좋아했는데 누군가 그만둬버렸잖아요. 거기다 스타크래프트 팬덤끼리 싸우기도 했고, 남은 일은 저희가 처리해야 했으니 결국 다들 속상한 채로 2013년이 끝났어요. 스타크래프트1 팬들의 생각도 이해 가는 게, 잘 보던 리그가 종목 전환을 한다는 이유로 사라졌으니 공격의 화살이 스타크래프트2 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그 상황에서 기존 e스포츠협회 소속 선수들에게 시드를 제공하는 등 모습을 보였죠. 기존 스타크래프트2 선수들의 반발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스타크래프트1 선수들이 스타크래프트2를 아예 못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격차가 1년 정도였고, 처음부터 같이 경쟁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다른 두 세력이 협력을 해야 하니 서로 양보하는 게 있어야 했고, 그게 시드권이었어요. Code A는 물론 Code S 시드까지 제공했으니 기존 팀의 불만도 당연했죠. 쉽지 않은 시절이었어요.

좋자고 시도한 일들이 어긋나면서 2013년 후반과 2014년 스타크래프트2 리그가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각 팀 리그 우승팀이 다른 팀 리그로 넘어가는 이해 가지 않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STX 그룹이 문제가 생기면서 소울이 GSTL로 넘어왔고, 반면 IM과 MVP, 그리고 프라임이 프로리그로 넘어갔는데 같이 하던 팀들이 소속을 바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아쉬웠을 거 같네요
당시 GSL을 운영하던 곰exp가 수익을 내지 못하던 상황이라 2014년이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그리고 스포티비 게임즈가 생기면서 프로리그는 OGN과 스포티비 게임즈가 공동으로 운영하다 결국 스포티비 게임즈에서 하게 됐죠. 여러 변화가 있던 시절에서 팀들이 소속을 옮겼고, 결국 GSTL은 운영하지 못할 상황이 됐어요. GSL만 남았죠. 우리가 팀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한 게 컸어요. 시작도 성장도 같이했는데 이러니 인간적인 섭섭함은 있었습니다. 그래도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이해되는 일이었죠.
 

비전 선포식 이전부터 팀 리그 종료까지, 그 과정에서 중간에서 답답한 상황이 정말 많았죠
그전까지는 모든 걸 우리가 알아서 했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온 거고,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역효과도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튜디오 결승 발표 당시가 제일 힘들었어요. GSL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2014년에서 2015년 중반까지였어요. 돈이 없으니까 뭔가 수를 내기는 해야 했는데, 결승을 야외에서 하고 시즌을 한 번 줄이던가 아니면 그 반대로 시즌을 세 번 하고 스튜디오 결승을 해야 했죠. 외부 결승이 신나긴 했지만 그럼 시즌을 한 번 줄여야 했고, 결과적으로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팬들에게 많은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후자가 나은 선택이었거든요. 하지만 커뮤니티에서는 왜 돈 벌어서 다른 곳에 투자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죠. 당시에는 말을 못 했지만 정말 돈이 없던 시기였어요. 제 생각에서는 최선의 판단을 했는데 몰라주니까요.

그리고 아프리카TV로 이직했죠. 많이들 궁금해하던 게 이직하면서 아프리카TV의 GSL-삼성동 스튜디오 인수가 결정된 건지, 아니면 각자 다른 상황에서 발생한 일인지였습니다
GSL을 옮기려고 이적한 건 아니에요. 일단 곰exp는 힘든 상황이라 더이상 e스포츠에 투자가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 와중에 아프리카TV가 성장하면서 e스포츠 사업을 하려 했죠. 서수길 대표님과 배인식 대표님이 친한 사이였고, 그래서 제가 추천을 받아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프리카TV의 비전이나 e스포츠 사업을 통해 시청자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이 확실해 이직을 결정했죠. 당시 아프리카TV는 제작 시설도 없고 메이저 e스포츠 리그도 없어서 한계를 맞은 상황에서 GSL과 삼성동 스튜디오를 인수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었죠. GSL이 힘드니 차라리 인수해서 운영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제작 시설도 마련하고 제 사심도 체우고.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TV의 이미지가 굉장히 안 좋았죠. 승부조작으로 퇴출된 사람들이 와서 방송하는 등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GSL이후 e스포츠에 투자하면서 크게 이미지 개선이 됐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GSL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미지 재고가 아니라 아프리카TV 플랫폼의 미래가 e스포츠와 맞아떨어졌죠. 단순히 한두 번의 투자가 아니라 2015년 후반부터 GSL과 ASL, 각종 리그 BJ 멸망전, 그리고 다양한 종목의 아프리카 프릭스 팀 운영 등 투자가 계속 이어졌거든요. 진정성을 느끼려면 달라진 모습을 계속 보여야 하는데 저희는 그 모습을 계속 보여줬거든요. 그래서 다들 변화를 믿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부터 GSL이 다시 안정기로 돌아섰는데, 스포티비 게임즈에서 스타리그를 시작하며 파격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죠. 반면 GSL은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고비를 넘기니 다른 위기가 찾아온 시기였죠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좋은 경쟁자가 나타난 거고, 당시 리그를 제작하던 PD들도 결국 GSL 초기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거든요. 김하늘 PD나 안성국 PD 모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죠. GSL을 하던 사람들이 나가서 자신들의 생각대로 다른 리그를 만드는 건 좋은 거죠. 그리고 GSL의 방향을 화려함보다 꾸준함으로 잡았기도 했고요. 경쟁 상대는 다른 종목이지 같은 스타크래프트2 리그는 아니었어요.
 

그라고 2017년부터는 GSL이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안정적인 구조로 접어들었습니다. 목표하던 방향으로 리그가 진행되는 거 같은데 본인이 보기에는 어떤가요
예전처럼 스타크래프트2가 인기 있지도 않고, 게이머 풀도 줄었죠. 그래도 ASL과 같은 리그로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블리자드 역시 스타크래프트2라는 프랜차이즈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선수들이 계속 활동하면서 팬들이 경기를 볼 수 있는 리그를 만들려고 했죠. 32강을 24강으로 줄이면서 선수들에게 차라리 상금을 더 분배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한 거고요. ASL과 GSL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이 이어진다면 GSL은 5년에서 10년 정도 더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선수들만 있으면 계속 하고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도 하는 게 아프리카TV죠. 이제 GSL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선수와 시청자가 있다면 꾸준히 열리는 대회로 만들고 싶습니다. 

10년동안 스타크래프트2-GSL과 함께 하며 이 두가지가 인생에 특별한 존재가 되었을 듯 한데요. 채정원이 말하는 스타크래프트2-GSL는 어떤 것인가요
사람마다 인생을 바꾼 게임이 있는데, 저에게 스타크래프트1은 게임에 입문하게 만든 게임이고 스타크래프트2는 직장인의 길을 가게 해준 게임이죠. 스타크래프트2와 GSL 덕분에 내가 가진 다른 역량도 발견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죠. 곰exp를 떠나며 그래도 GSL은 어떻게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 그렇게 됐죠. 누군가 커뮤니티에 제 이직 소식을 듣고 비슷한 이야기를 남긴 게 기억나요.

GSL을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와 순간도 있을 테죠
오픈시즌 개막전과 Code S 개막전, 그리고 해운절이 기억에 납니다. 다들 사람이 안 와서 안타까웠던 순간이네요. 그리고 정종현, 임재덕, 박현우, 문성원 같은 선수가 기억에 남는데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이원표입니다. 귀신같이 Code S에 도전하는 Code A 선수들이 과연 자격이 되는지 시험하는 수문장 같은 기믹이었고. 결국 판독기라는 별명을 얻었죠. 당시 GSL에서 일했던 김하늘 PD의 역작이죠.

인터뷰를 마치며 10년간 함께 해온 GSL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10년 전에 오시던 팬들이 지금도 옵니다. 10년 동안 리그가 있도록 해준 분들이죠. 처음부터 같이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계속 GSL을 봐주신 분들 덕분에 GSL이 단일 브랜드로 10년 넘게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GSL이 10주년이고, 이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거 같습니다. 추억을 같이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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