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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뱅' 배준식, 쉼없이 노려온 시간의 과녁들

박상진2017-09-27 00:00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은 전 세계에서 각지를 대표하는 팀들이 모여서 한 해 최고의 팀을 가리는 자리다. 그 규모와 관심도 덕분에 월드컵을 빗대 롤드컵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 대회는 지금까지 총 여섯 번 개최됐고, 올해 중국에서 일곱 번째 대회를 치를 예정이다.

여섯 번 열린 이 대회에서 SK텔레콤 T1은 세 번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 롤드컵 첫 출전에서 우승한 SK텔레콤은 2년 후인 2015년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했고, 다음 해인 2016년에 또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현재까지 유일한 롤드컵 3회 우승-2연 연속 우승을 기록한 팀이다.

'뱅' 배준식은 SK텔레콤 T1에서 2014년 시즌부터 활동해 롤챔스 4회 우승과 MSI 2회, 그리고 롤드컵에서 2회 우승을 차지한 원거리 딜러다. 경력으로만 따지자면 배준식 위에 있는 선수는 같은 팀의 '페이커' 이상혁과 전 동료였던 '벵기' 배성웅 정도일 정도로 배준식은 선수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배준식은 여전히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세 번째 롤드컵 우승을 향해 달리고 있다. 2017년 그에게 많은 일이 있었지만, 선수 본연의 목표에 더욱 충실해 최고의 위치에 오르겠다는 각오로 롤드컵을 준비하던 중 시간을 내어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10월 중국에서 열리는 롤드컵을 대비한 연습 중으로 알고 있다. 올해로 세 번째 롤드컵에 진출하는데 소감이 어떤지. 그리고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대회인데, 여전히 우승에 대한 욕심이 있는가.

아직은 롤드컵에 간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실감이 안 나기보다는 세 번째로 겪는 경험이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다. 모든 경기가 중요한 롤드컵이지만, 이제 대회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경험이 쌓여 크게 와닿는 건 없다.

이번 대회도 16강 조 편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니 누굴 만나든 승리해야 한다. 상위 라운드를 위해 미리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거도 좋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대회이니만큼 자신감도 있다.

이미 두 번이나 우승한 대회지만 이번에도 정말 우승하고 싶다. 나를 위한 우승이 아니라 팀 동료들이나 코칭스태프, 팀 사무국과 팬들 모두에게 보답하는 게 롤드컵 우승이다. 상금도 무시 못 할 수준이지만, 이제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 같이 행복하려면 경기에서 이기는 방법이 최고라는 이유가 더 크다.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행복을 얻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 쉽지 않아 보였다. 특히 올해는 일정도 빡빡했고 여러 가지 일도 있었는데, 프로게이머를 시작하면서 이런 생활을 하게 될 거로 예상했는지.

어차피 경기에서 지면 내가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결국 나도 행복하려면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 경기를 준비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졌을 때 받는 스트레스나 피로가 더 크니까 잘 준비해서 승리로 스스로에게 보상해주는 게 더 좋더라. 그리고 승리가 당연한 팀이 되다 보니 졌을 때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찮았다.

일정 같은 경우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쉴 틈이 없다는 사실이 정말 힘들었다. 올해는 서머 스플릿이 끝나고 나흘 정도 쉰 걸 말고는 일주일에 하루를 쉴까말까한 상황이 계속 이어져 힘들었다. 이제 롤드컵이 끝나야 쉴 수 있다. 체력적인 문제보다는 여유가 없다는 정신적인 압박이 컸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에는 이런 생활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다들 연습은 열심히 하다 보니 더 게임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더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한 팀에 좋은 성적을 내게 되더라. 프로게이머 생활 초기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인데, 선수 생활을 경험하면서 알게 된 부분이다. 열일곱 살에 학교는 다니기 싫고 하고 싶은 게임만 하고 싶어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게 됐고, 테스트를 통과해 서울에 왔던 시기나 이전 팀에서 성적에는 욕심 없이 게임만 했던 시절과는 전혀 달라진 상황이다.
 


승부욕이 없었다니 지금 보면 전혀 이해 가지 않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승부욕에 눈뜬 시기는 언제인지. SK텔레콤 입단이 영향을 준 부분인가.

14년 SK텔레콤에 입단했고, 15년도부터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SK텔레콤에는 '울프' 이재완과 같이 들어왔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부터 재완이와 아는 사이였는데, 당시 고랭커 게이머끼리는 서로 이야기는 한번은 해보고 어떤 사람인지는 아는 사이였다. 재완이와는 동갑에다가 마음도 잘 맞았다. 지금도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SK텔레콤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게임하는 방식을 잘 몰랐다. 팀원 모두 랭크도 높고 점수도 높았는데, 팀플레이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라인 관리나 운영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김정균 코치가 우리 팀을 처음 보고는 놀랄 정도였다. 대체 탑-미드-바텀 모든 라인을 이겨놓고 왜 게임을 지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코치님이 하나씩 알려주기 시작하면서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알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14년도와 15년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달라진 거 없이 하던 대로 준비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열심히 안 하는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선수 모두 열심히 했고, 팀 단위로 어느 팀이 더 경기 준비를 잘 하느냐로 결과가 갈렸다. 그 부분에서 우리 팀이 잘 해서 15년도 스프링 롤챔스를 우승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첫 롤챔스 우승 이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에 출전했다. 결승에서 중국 EDG에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당시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준우승이라면 나쁜 성적은 아니었는데.

2016년 스프링 7위나 서머 3위, 그리고 올해 서머 스플릿에서 당한 4연패보다 MSI 결승 패배의 후폭풍이 더 버티기 힘들었다.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경기에서 패배했다는 사실, 그리고 조금만 더 잘했으면 이길 수 있었는데 하는 분함이 가장 컸다. 

두 번째로는 우리에 대한 반응이었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는데 대회에서 준우승했다고 미국에서 한국까지 헤엄쳐서 오라는 이야기나, 14년도 삼성 갤럭시가 없는 상황에 호랑이 없는 굴에서 여우가 왕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힘이 빠졌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괜찮으냐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 패배 상황이 떠올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이건 우리 생각해서 해주는 이야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MSI 결승에서 EDG에게 패배한 이후 오히려 팀 전력은 강해져서 15년 서머에서는 유례없이 강한 전력을 보이며 다시 우승을 차지했고, 롤드컵 직행까지 손에 넣었다. 아직도 당시 전력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선수는 모르겠지만, 나는 MSI에서 패배하고 마음에 맺힌 게 많았다. 그걸 풀려면 우리가 롤드컵에 나가서 EDG를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걸 위한 과정인 롤챔스 서머 우승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대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생각이었고, 이런 각오 때문인지 롤챔스는 쉽게쉽게 우승까지 갈 수 있었던 거 같다. 

빨리 EDG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어서 그런지 롤드컵 대회 자체에 대한 동경은 크게 들지 않았다. 김정균 코치와 같은 팀원만 믿고 따라갔다. 내가 큰 대회에 나선다는 거보다 지금 뭘 열심히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잘할까 이런 생각으로 물 흐르듯이 지낸 기간인 거 같다.
 


15년 롤드컵 16강에서 EDG와 같은 조에 편성됐고, 전승을 거두며 MSI 결승 패배를 복수했는데 그때 기분은 어땠나.

정말 통쾌했다. 하지만 EDG를 잡는 건 롤드컵 우승을 위한 과정이었고, 이 대회에서 우승해야 MSI의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EDG와의 경기에서는 승리했지만, 그 과정인 조별 경기 연습 과정이 엄청 힘들었다.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스트레스도 심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연습이 잘 안 풀렸다. 연습 경기에서 실수도 잦았고, 그래서 승률도 잘 안 나와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보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기고 더 잘될 수 있는지 경험으로 알지만, 그때는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서 실수나 패배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팀원 모두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아서 실수가 나왔다는 거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본인 실수로 경기를 그르치는 거로도 힘들었다.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해서 패배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가 지면 정말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얼마나 대회에 집중했냐면, 내가 유럽을 돌면서 경기를 한다는 거를 크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유럽을 돌며 경기한다는 게 정말 재미있고 뿌듯하고 당시 경기도 생각난다. 해외에 나가면 음악을 자주 듣는데, 그때 들은 노래를 지금 들으면 아직도 유럽에 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팬들이 유럽에서도 도시락을 준비해서 선물해주셨는데, 음식이 정말 맛있어서 아직도 기억난다.

한국 팀이 롤드컵에서 우승한 건 2013년 롤드컵부터인데, 한국 팀 결승이 벌어진 건 그때 롤드컵이 처음이었다. 이후에도 계속 치고받은 쿠 타이거즈(ROX 타이거즈)와 대결했는데, 본인에게 2년 동안 타이거즈는 어떤 팀이었나.

15년에는 타이거즈가 한 번도 무서웠던 적이 없다. 경기는 박빙이었어도 우리가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우리가 모든 라인에서 앞서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6년도 타이거즈는 정말 무서웠다. 스프링 결승에서 만났을 때는 작년보다 무서워진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롤드컵에서 만났을 때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반반이거나 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2년 동안 점점 강해진 팀이 타이거즈였다. 15년도에는 쉽게 생각했는데, 16년 마지막에는 팀원 모두가 무섭다고 말할 정도였다. 롤드컵도 우리가 우승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 MSI에서 만났던 RNG도 위협적이었고, EDG도 다시 서머를 우승해 온데다가 타이거즈의 전력도 엄청났다.
 


롤드컵 우승 후 재계약 시즌에 SK텔레콤을 떠나 중국 팀에 갈 거라는 소문이 퍼지며 재계약 여부에 많은 관심이 모였는데 결국 팀에 남았다. 다시 SK텔레콤에 남은 이유가 있다면.

중국행 루머는 아주 실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거 같다. 재계약 시즌이 선수들에게 중요한 기간이라 쉬어도 쉬는 게 아니고, 이걸 보는 팬들은 더 조마조마하는 거 같다. 한편으로 이런 루머들을 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축구를 즐겨보는데, 축구 이적 시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내가 당사자이면서 지켜보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더 묘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결국 한국이 좋아서 SK텔레콤에 남기로 했다. 생활이 편하기도 하고 팀에서도 잘 챙겨줬지만, 동료들과 새로운 목표를 이뤄보고 싶었다.

16년을 회상해보자면 끝은 좋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힘든 한 해였다. IEM, 롤챔스, MSI, 롤드컵까지 모두 우승했는데, 본인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

과정이 험난하긴 했는데, 나는 대회에서 크게 힘들었던 기억은 없었다. 우리 팀 모두 본인 실수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고 힘들어하고, 내가 제일 심하다. 그래도 작년에는 나보다 다른 팀원들이 더 힘들어했다. 

그리고 서머 결승을 가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웠다. 16년 스프링까지 우승하지 못했다면 내내 마음에 남을 한 해가 될 뻔했다. 스프링에는 7위까지 처졌는데, 모든 선수가 정말 게임에만 집중할 정도로 열심히 했고 그래서 우승을 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까지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반면 서머에서는 3위를 해서 롤드컵 선발전에 나가야 하는 상황 직전에 몰렸다. 다행히 롤드컵에 바로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더 잘할 수 있는 경기를 졌고 그 상대가 kt라는 게 너무 아쉬웠다.
 


천신만고 끝에 롤드컵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서 플래시 울브즈에게 1패를 당했는데, 이들이 한국 팀에 강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그리고 8강과 4강에서 강한 팀이라 생각했던 RNG와 타이거즈를 각각 격파했다.

플래시 울브즈는 그 팀만의 특징이 있다기보다는 당시 다른 팀보다 잘하는 팀이었기에 우리에게 승리한 팀이다. 당시에는 우리보다 잘하는 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RNG와의 8강은 생각보다 쉬웠다. 첫판을 내주고 연달아 세 판을 가져오며 이긴 경기인데 시간이 지나고 이긴 기억만 남아서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경기 전에는 정말 부담이 심했다.

타이거즈와 4강 경기는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두 팀이 만났는데, 밴픽도 플레이도 모두 재미있게 한 경기였다. 지면 아쉽겠지만 우리가 준비한 걸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경기 내에서 즐거움과 분노와 아쉬움 등 모든 감정을 느낀 경기였다. 50분 경기를 했다고 치면 30분은 재미있고 15분은 짜릿하고 5분은 화나는 상황이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고 이긴 경기라 좋은 기억만 남은 거 같다.

삼성과의 결승에 앞서 총을 쏘는 세레모니를 했는데. 그리고 결승 경기 역시 풀세트 접전이었고,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 경기 전에 세레모니를 하나씩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내 아이디인 '뱅'에 맞춰서 총을 쏘는 세레모니를 보였다. 삼성과의 경기는 4강과 마찬가지로 힘든 경기였지만, 극적으로 이긴 4강이 더 힘들었다. 

결승전 마지막 세트 넥서스를 깨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기분이 들더라. 기쁜 거와는 다른 감정인데,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보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엄청나게 좋은 기분이었고,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롤드컵에 우승하고는 김정균 코치에게 시계도 선물했다. 그해 스프링 1라운드를 7위로 마치고는 IEM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공항에 갔는데, 면세 구역에서 김정균 코치가 시계를 구경하고 있길래 롤드컵이 우승하면 사드린다고 약속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김정균 코치가 진짜냐고 거듭 확인하며 사진까지 찍었다. 그리고 롤드컵에서 우승한 후 진짜 시계를 사서 선물하고, 김정균 코치가 쓰던 시계를 내가 받았다.

16년 시즌이 끝난 후 다시 한번 SK텔레콤 잔류를 선택했다. 그리고 '벵기' 배성웅이 팀을 떠난다는 점을 굉장히 아쉬워했는데.

다시 팀에 남은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한국이 좋고, 한국에서 우승하는 게 내 미래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국에 갔던 선수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고, 미국도 생각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에 남고 싶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 계약이 확정되기 직전까지 정해진 게 거의 없었다. 그래도 팀에서 내년 팀 구성이나 운영에 대해 좋게 해줬다. 전해에 비해 새로운 도전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그리고 성웅이 형이나 호성이 형이 팀을 나간다는 거에 많이 슬펐다. 그래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트위터에 노래 가사를 올렸다. 15년 시즌이 끝나고 경환이 형이나 지훈이 형이 나갈 때도 비슷한 감정이긴 했는데 성웅이 형이 나간다니 더 슬펐다. 재완이도 많이 아쉬워했고, 나는 이불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의지도 많이 했고 정말 착한 형과 오래 같이 생활해서 더 슬펐던 거 같다. 그때 운 이후로 지금까지는 안 울었다.
 


17년도 시작은 좋았다. 롤챔스 스프링 스플릿에는 15년 서머의 재림이라고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고, MSI에서도 우승하며 호나우두를 만나기도 했는데.

롤챔스 스프링 스플릿에서는 우리팀 선수 모두가 좋은 플레이를 보였다. 우리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실수가 적었고, 우리보다 상대의 실수다 더 잦아서 스프링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세로 MSI까지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호나우두를 만났는데 정말 신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 스타를 만나니 정말 신기한 기분이 들더라.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호나우두를 만나기 전까지 똑같은 과정에서 삶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일을 해도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만남이 내게 도움이 되는 큰 경험이 됐다. 내가 살다살다 호나우두를 만나는구나, 내가 내 일을 열심히 하니까 이런 기회가 온 거구나 하는 생각. 그동안 힘들었던 걸 잊을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다.

MSI 이후 계속 일정이 있어 휴식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후 벌어진 서머 스플릿 경기력에 영향을 끼쳤는지.

없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정이었다. 나도 휴식이 없다는 거에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어쨌든 매일 새벽 2~3시까지 연습을 하는 등 다른 선수와 똑같은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리프트 라이벌즈나 이후 4연패를 당하며 오히려 연습의 집중도가 더욱 올랐다. 연습 패턴이 무너진 상태에서 패배를 당한 게 아니라 서로 더 연습에 집중하고 열심히 하자고 하며 다시 경기력을 찾았던 거 같다.
 


4연패 도중 과거 개인 방송에서 했던 발언이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경기 내적-외적으로 모두 힘든 일이 있어 힘든 시기였을 거 같다.

그 사건 이후로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분명 내가 잘못한 부분이다.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개인 방송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는 행동이나 말을 더 생각하고 조심하고 있다. 내가 했던 말이 어느 부분에서 잘못됐고, 왜 하면 안되는지 항상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는 게임에 더 집중하려 한다.

개인 방송에서 예전 같은 모습을 보고 싶다는 분들도 있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나는 개인 방송도 하지만 그 전에 프로게이머이기 때문이다. 이걸 겸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의 나는 방송을 하면서 단순하게 내가 상처받은 걸 그대로 방송에 표출했는데, 이제는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그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방송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일에도 결국 결승 진출에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롱주 게이밍에게 패배하며 처음으로 롤챔스 준우승을 기록했다.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을 텐데.

결승이 끝나고 경기를 복기했는데, 우리 실수가 많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kt를 꺾은 후 롱주전을 준비했는데, 롱주가 우리보다 준비를 더 열심히 잘 해왔다. 반면 우리는 준비한 게 정말 잘 안 풀렸다. 나 역시 아쉬움이 남은 경기다. 특히 첫 세트에서 자크에게 갱킹을 당해 죽지 않았다면 그다음 경기까지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을 거 같다.

그래도 경기가 끝나고 크게 후회가 남지는 않았다. 리프트 라이벌즈 이후 정말 모든 시간을 연습과 경기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다른 문제더라. 정말 1세트에서 내 플레이 한 번이 정말 아쉬웠다. 그래도 롤드컵에는 올라갔고, 대회를 준비할 시간은 있으니까 더 큰 무대에서 복수하자는 생각이다. 마지막에 승리하는 게 중요하니까. 아예 지지 않는 게 좋지만, 이미 패배한 경기이니 앞으로 준비를 잘 해서 승리하자는 생각이다.

하지만 롤드컵에서 롱주를 잡는 게 최종 목표는 아니다. 우리가 롱주를 잡으면 좋겠지만, 대진상 그게 쉽지가 않으니 복수보다 그냥 우리가 우리 경기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 상금도 커졌고, 올해 합류한 선수들은 롤드컵 우승에 대한 갈망이 정말 크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정말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준비해서 좋은 경기를 치르는 게 중요하다.

선수 생활을 하며 인터뷰 시작 때 이야기했던 주위 사람들의 행복과 본인의 고통이 상충되는 상황이 계속 생기는 거 같다. 특히 올해 여름 마음 고생이 심했을 거 같은데.

개인 방송 문제야 내가 정말 조심하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고, 내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 내가 스스로 극복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내가 노력해서 다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점인데, 일정은 정말 힘들었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 팀이든 MSI에 출전해서 우승을 하면 비슷한 일정을 겪었을 거고, 충분히 미리 조정할 수 있었던 거 같다. 휴식이 없다는 심리적 압박에 갇히다 보니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가는 거 같다.

그래도 힘든 과정에서 항상 응원해주고 챙겨주는 팬들이 힘이 됐다. 내가 일일이 감사드리지 못한 게 아쉽다. 너무 감사한 분들이 많고, 팬들이 날 챙겨줘서 힘든 일 가운데에서도 계속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거나 신경을 써주는 데 둔감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거나 하는 일에 신기하고 감사하다. 힘든 이 생활에 의미를 찾을 수 있어 감사하다. 스트레스 속에서도 내가 계속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다.
 


롤드컵이나 롤챔스 우승 등 선수로서 기록을 많이 세웠는데, 프로게이머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프로게이머로 가장 큰 목표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거고, 내 플레이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행복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거다. 결과로 나타나는 성적도 중요하지만, 우리 팀과 나를 보는 분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으면 좋겠다. 개인 방송에서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나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보이려고 한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나와 우리 팀 경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부모님의 의사도 중요할 거 같은데 본인 부모님은 본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시는지.

부모님이 개방적인 분들이시라 처음부터 내 생각에 찬성하셨다. 원래 학창 시절의 꿈은 육군사관학교를 가는 거였는데, 크게 노력을 하지는 않은 그냥 꿈이었다. 그리고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게임도 하고 테스트도 보고 17살에 서울로 떠나 내 꿈을 이루고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인생을 사는 걸 보니 부모님은 나를 보고 대견해 하신다.

15년 롤드컵 이후 다이어트도 성공하고, 프로게이머로서 좋은 커리어도 내는 걸 보니 목표를 정하면 꼭 달성하는 거 같다. 프로게이머로서 성적과 마찬가지로 다이어트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내 인생의 많은 일이 그렇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거 같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운동이 정말 힘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든 해낸 거 같다. 당시 어디선가 저 사람은 방구석에서 먹고 게임만 하나보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상처받아 독기가 생겼던 거 같다. 게임 실력도 중요하지만 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나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프로게이머라고 게임만 하고 그런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하게 살기 힘든 성격에다가 너무 달리는 인생이다. 그리고 이제 뭔가 이루기보다는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첫 롤드컵 우승을 했던 15년에는 그냥 코칭스태프나 동료들을 따라 우승했는데, 이제는 우승이 너무 당연시되는 상황이다. 창업은 쉬워도 수성은 어렵다는 말이 이해가 갈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래도 이 자리를 지키는 거 자체로도 멋진 일이라 생각해 나와 같은 배를 탄 사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살을 뺀 거처럼 언젠가 돌아보면 스스로가 대견할 거 같다. 

그래서 최고의 자리를 계속 지킨 김연아 선수 같은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다. 예전에는 피겨 스케이트를 정말 잘 하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정말 쉽지 않았다는 걸 느낀 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김연아 선수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한다.

김연아나 호나우두처럼 본인을 보고 프로게이머의 꿈을 키우는 사람도 있을 거 같은데,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나.

인터뷰마다 계속 이 질문에 대해 답이 달라지는 거 같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처음 2~3년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가 고민하고 생각을 다듬고 있다. 굉장히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좋아서 하는 일인데 다른 일은 어떻겠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 대답하자면 승부의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도전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말로 설명하기 정말 힘들다. 기회가 된다면 누구든 내 몸으로 1주일만 살아보라고 하고 싶다. 힘든 걸 알아달라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은 이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며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내가 말을 잘 못 하는 편이라 내 마음이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다. 이제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나와 우리 팀을 지켜봐 주시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 정말 쉽지 않은 한 해였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항상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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