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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진태민-이민섭, e스포츠에 음악으로 색을 입히다

박상진2017-02-03 04:30


e스포츠 리그의 주인공은 선수와 관중이다. 선수들의 플레이가 관중을 매료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고, 방송을 제작하는 과정에는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 캐스터나 해설 등 직접 드러나는 사람 외에도 더 많은 사람이 e스포츠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방송 영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음악이다. 상황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음악은 꼭 필요하다. 음악이 바로 인상 깊게 들리지는 않지만, 나중에 경기나 시즌의 분위기를 회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음악이기도 하다.

최근 막을 내린 ASL 시즌2나 작년 변현우가 우승한 GSL 시즌2에서 사용된 음악들은 대회의 분위기를 특히 잘 살렸다. ASL 결승에 오른 염보성은 '염깨비'라는 별명을 얻었고, 대회 내에서 도깨비 OST를 편곡해 사용했다. 물론 그의 상대이자 우승자인 이영호를 상징하는 곡인 일렉트릭 로미오 역시 결승에 사용됐다. 변현우 역시 소속팀 없이 우승했다는 그의 이미지를 담은 야인시대 OST가 결승전에 사용되며 관중과 시청자의 기억에 남았다.

과연 이런 음악은 누가 찾아 편곡하고 선곡해서 방송에 내보낼까. 아프리카 TV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진태민-이민섭 두 음악감독을 찾아 e스포츠 방송에서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GSL 초창기부터 음악을 담당했고, 최근 ASL과 GSL, 오버워치,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다양한 종목 중계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진행하는 e스포츠 리그가 늘면서 점점 작업량이 많아질 거 같은데, 업무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진태민: 아프리카 이전 곰티비 시절에도 다양한 음악 작업을 진행했다. GSL말고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레나 외에 다른 리그 음악을 진행했다. 다만 당시에는 GSL이 Code A도 있고, Code S도 있고, 팀 리그인 GSTL도 있어서 스타크래프트2 게임 하나로 다양한 리그를 진행했다. 지금은 스타크래프트2와 브루드워, 리그 오브 레전드 등 다양한 종목의 음악을 모두 담당한다. 그리고 일의 양이 정해진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준이 되어야 끝내는 거고, 우리는 그 수준을 높게 잡아서 여전히 일은 많다. 서로 각자 리그를 맡아 분담하는 형식으로 일을 진행하되 서로 바쁜 일이 생기면 도와준다.
 


가장 최근에 끝난 리그가 ASL이다. 대회 자체에 어떤 테마를 부여해 음악을 준비했는지.

이민섭: 브루드워로 진행된 ASL에는 클래식한 분위기를 주고 싶었다. 10년 넘게 리그가 이어지고 있고, 관객들도 리그가 오래됐다는 걸 알기에 방송에 들어가는 음악 역시 같은 분위기로 준비했다. 그리고 '택뱅리쌍'이라고 불리는 각각 이미지가 강한 선수 넷과 이번 대회를 통해 '도깨비'라는 이미지를 가진 염보성까지, 대회 내에서 주목받은 선수들이 많았다. 

대회를 보는 관중과 시청자들이 늘면서 자연히 방송에 사용된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었고,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이영호 대 이제동 경기나, 결승전 경기가 끝난 후 사용된 곡을 궁금해하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각 선수가 예전에 우승했을 때 사용한 곡도 꽤 사용했다.

진태민: 결승전 음악도 많이 고민했다. 염보성은 '염깨비'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테마가 잡혔고, 그래서 결승전에 어울리게 도깨비 OST를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바꿔서 리믹스했다. 이영호는 워낙에 일렉트릭 로미오라는 곡과 연결되는 선수라 결승전에서는 기존 곡에서 조금 더 모던한 분위기를 내도록 편곡했다.

염보성의 이미지 덕분에 대회에서 한국 곡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인디 밴드 앨범들도 빠지지 않고 다 챙겨 듣는데, 상황과 곡이 어울리지 않아 사용하지 못했었다. 이번처럼 테마가 된다면 누구나 그 노래가 나오길 기대하게 되고, 우리도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대회 곡으로 사용한다.

2016년 GSL 시즌2에서 우승한 변현우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작가나 PD에게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고, 그 과정에서 사용할 곡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야인이라는 변현우의 이미지에 맞는 다른 곡들도 찾아봤는데, 야인시대보다 어울리는 곡이 없다. 그래서 박상현 캐스터의 목소리 톤과 맞추기 위해 드럼을 보강하고 인트로를 추가하는 등 리믹스 작업을 했다. 다른 작업과 병행하긴 했지만, 이 작업에 1주일이 걸린 거 같다.
 


아프리카에서 본격적으로 e스포츠 리그 종목을 확대하며 기존 스타크래프트2 외에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 리그도 진행 중이다. 종목별로 준비하는 음악의 테마도 다를 거 같은데.

진태민: ASL은 한창 브루드워 리그가 진행 중일 때 사용됐던 모던 락이나 하드코어 음악을 베이스로 사용한다. 오버워치는 특유의 슈팅감과 무겁지 않은 원작 게임 분위기를 감안해 약간 밝은 일렉트릭 장르의 곡을 넣는다. 아프리카에서 진행하는 e스포츠 리그 중 가장 오래된 GSL는 가장 많은 장르의 곡을 방송 중에 사용하고, 올해 아프리카에서 처음 시작한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스 코리아에는 기존 방송에서 사용했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우리만의 색을 입혔다.

음악 감독이라는 위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데, 유독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진태민 음악감독이다. 이민섭 음악감독이 옆에서 바라보기에 진태민 음악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이민섭: 어떤 작업이건 내가 열심히 배우는 입장에서 믿고 따라가다 보니 힘들었던 시간도 힘이 되더라. 진태민 음악감독님은 시간을 정말 잘 사용한다. 나는 시간 관리를 잘 못 하는데 책도 자주 읽고 영화도 자주 본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신 일해주는 로봇이 따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농담도 한다.

진태민: 자녀가 둘 있는데 모두 어려서 이제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건 불가능하다(웃음). 대신 영화 OST는 거의 다 듣는다. 최근 음악 흐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선두에 서 있는 미국이나 유럽 제작사는 어떻게 작업하는지 알아야 하니까. 우리가 맡은 일에서 e스포츠 대회 방송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그램의 음악보다 차이 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었다. 그 중에서도 정해진 시간 내에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 트레일러는 꼭 본다.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 맞는 음악을 사용하는 게 e스포츠 대회 방송과 비슷하고, 그만큼 수준이 높은 트레일러도 많다.

잘 만든 영화 트레일러는 영상과 음악이 서로 잘 어우러지고, 이를 보면서 감탄하거나 자극을 받는 일도 많다. 작업하다가 다른 걸 보고 기존 작업에 대해 고민하거나 실마리를 얻는 경우도 많다. 아쉬운 부분이 느껴진다면 왜 아쉬울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면 최근 들은 영화 OST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진태민: 킹스맨과 라라랜드가 기억에 남는다. 특히 킹스맨 OST는 음악 자체가 세련됐고, 레코딩 수준이 훌륭할 정도다. 오케스트라 레코딩이 사용된 영화 음악 중에서는 교본이자 모범 답안 수준이다. 

킹스맨 OST는 음악 자체도 정말 좋다. 음악 감독인 헨리 잭맨의 작업 방식이 재미있는데, 영화에 대한 정보 일부를 얻은 뒤 메인테마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 안 보고 작업을 마친다. 이후 메인 테마가 완성되면 그제야 영화에 대한 추가 정보를 받아 세부 장면에 사용될 음악을 만든다. 미리 영화에 대한 정보를 다 알아버리면 비슷비슷한 결과물이 나와서 그걸 막기 위해 정보를 차단하는 거다. 그래서 좋은 음악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한스 짐머와 크리스토퍼 놀란이 참여한 인터스텔라 역시 비슷한 구조였다. 놀란은 인터스텔라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짐머 부자에 관한 짧은 단편을 써서 그에 어울리는 소품을 달라고 부탁했다. 짐머의 아들이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을 이용했다. 놀란이 써준 글은 디테일한 상황 설명 없이 아버지가 집을 나서며 꼭 돌아오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글이었다. 짐머가 글을 보고 피아노 소품을 완성하자 놀란이 그제서야 인터스텔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놀란이 영화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자 짐머는 블랙홀이나 우주에 관한 영화와 어떻게 이 곡이 어울리냐고 물었다. 그러자 놀란은 딸을 떠나며 꼭 돌아오겠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인터스텔라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보고 놀란을 다시 바라봤다.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공개했으면 웅장하고 미래적인 분위기의 곡이 나왔을 텐데, 인터스텔라 OST는 분명 다르다. 같은 일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편견에서 빠져나오기 힘든데, 놀란은 이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며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교본이나 모범 답안 이야기를 들으니, e스포츠 리그 중계방송은 참고할 게 없어서 작업 중 막막할 때 풀어내 가기 쉽지 않을 거 같다.

진태민: 그래서 더 재미있다. 곡을 고르는 게 얼핏 보면 쉬운 거 같지만, 정말 큰 부담이 가는 작업이다. 리그 시작이나 결승 같은 경우에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야 하니까 정말 모든 걸 다 고려해야 한다. 시즌 컨셉에 맞는 곡을 골라야 하는데 맞는 곡이 안 보이거나, 믹싱을 해야 하는데 잘 어울리지 않는 순간이 가끔 온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드리면 열리더라. 고민의 순간을 많이 느끼면 느낄수록 그만큼 늘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확신이 생긴다. 나는 해결할 수 있는데, 다만 지금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근거 없는 내 자신감일지는 모르겠는데, 여유를 갖고 기다리면 저절로 풀리더라.

이번 시즌부터 아프리카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스 코리아를 진행하는데, 기존 리그 오브 레전드 방송에서는 고정된 패턴의 곡이 주로 사용됐는데, 변화를 줄 생각이 있는지.

진태민: 다양한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밴픽이 중요하고, 그 순간만큼은 이번 시즌 새로운 곡을 넣는다거나 큰 변화를 당장 주지는 않을 생각이다. 무엇을 하는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좋아하고 편안함을 느껴야 하니, 그 기준에서 변화를 줄 생각이다. 물론, 기존 방송에서 사용된 음악은 좋은 곡이고, 분위기에도 잘 어울린다.
 


e스포츠 리그 경기 중계방송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며 하며 세운 목표가 있다면.

진태민: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리그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계속 우리 작업을 진행하고 싶다. e스포츠외에도 아마존이나 헐리우드 제작사와도 같이 작업해보는 게 목표다. 가장 좋은 결과물을 내어야 하는 작업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결해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이민섭: 나는 아직 배우는 단계다. 더 다양한 색의 음악을 듣고 사람들에게 이질감 없이 느끼게끔 배우고 단련해야 한다. 진태민 감독님은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의 색을 알고, 그걸 영상에 접목시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드시는데, 그런 모습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감독님은 말을 하는데도 이 말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여러 번 생각해서 말한다. 그런 생각 자체가 리그에 사용될 곡을 고르는 능력과 연결된다고 본다. 이 곡은 왜 써도 되고 저 곡은 왜 쓰면 안 되는지 하는 부분.

인터뷰를 마치면서 시청자와 인터뷰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진태민: 단순히 방송에 쓸 음악을 선곡하고 편곡하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전 세계의 좋은 음악을 e스포츠 중계를 통해 소개하고 싶다. 우리가 하는 일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지만,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시청자들이 방송에서 세련됨을 느낄 수 있다. 가끔 같은 곡을 써주길 바라는 시청자들도 있는데, GSL을 비롯한 아프리카에서 제작하는 리그들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방송된다. 같은 음악만을 써서는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취향에 맞출 수 없다. 모두에게 좋은 곡을 알려주고 싶다는 게 내 목표 중 하나다. 그리고 많은 팬과 레이블에서 정보도 주고 곡도 주는데 언제나 감사드린다.

이민섭: 무엇보다 리그 중계를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음악이 있다면 정식적인 루트를 통해 올바른 방법으로 들어주고 구매해주셨으면 한다.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곡을 만들고 연주하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된다. 우리도 계속 일을 열심히 할 테니 어떤 리그든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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