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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쿠로' 이서행, 팬들과 함께한 4년을 말하다

박상진2017-01-14 00:00



한 번의 롤챔스 우승과 두 번의 준우승, 롤 케스파컵 우승, 창단 첫해 롤드컵 준우승, 다음 해 롤드컵 4강. 2년 동안 타이거즈라는 이름의 팀이 거둔 성과다. 혜성같이 등장해 놀라운 성적을 거둔 타이거즈는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당시 타이거즈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은 2016시즌이 끝나고 모두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쿠로' 이서행 역시 마찬가지다. 2016 롤챔스 서머 우승을 차지한 후 눈물을 펑펑 쏟던 이서행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올 시즌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서행이 한국에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많은 팀 중 아프리카 프릭스를 선택했을까. 시즌 시작을 얼마 앞두지 않은 날 아프리카 프릭스 연습실 근처에서 이서행을 만나 그의 선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2년간 타이거즈 생활을 마치고 작년 말 아프리카 프릭스에 입단했다. 아프리카 프릭스에 입단한 소감은 어떤가.

이번 시즌 아프리카 프릭스에 가장 먼저 입단한 게 나다. 그리고 뒤이어 팀에 합류한 선수들을 봤는데 걱정이 많이 됐다. 과연 이 팀원들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타이거즈 시절 워낙 팀 분위기가 활발해서 이런 분위기의 팀이 또 나올 수 있을까 했는데, 아프리카 프릭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팀 분위기는 비슷하다. 다만 타이거즈 시절을 광란의 파티라고 한다면 지금은 시끌벅적한 파티 분위기다. 그야말로 기우였다.
 


작년까지 활동한 타이거즈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먼저 나진에서 '고릴라' 강범현과 함께 타이거즈로 이동한 이유가 있다면. 

나진에 남고 싶었으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1팀 체제로 바뀌면서 주전 경쟁을 해야 했다. 경쟁도 경쟁이거니와 내 출전 여부도 확실하지 않았다. 다른 일도 있었고, 그래서 그 상황에서 더 좋은 팀을 찾아보자고 선택했다. 나진을 나와 다른 팀에서 입단 제의를 받긴 했지만, 타이거즈의 조건이 제일 좋았다.

2년 간의 타이거즈 생활은 힘든 일도 많았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다. 타이거즈에는 강압적이거나 기가 센 사람이 없었다. 다들 착하고 유도리 있어서 팀 내부적으로 분위기가 나빠질 일도 없었다. 다들 다른 팀에서 프로 생활을 한 선수들이라 가능했던 거 같다. 다들 스스로 알아서 잘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자신의 전 소속팀을 만나면 더 열심히 했던 거 같다. 자신의 선택을 증명하기 위해 다들 더 노력했었다.

2014년 말 창단부터 2016년 시즌까지, 타이거즈 생활을 정리하자면.

물론 타이거즈 초창기는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주위의 시선이었다. 퇴물이 모인 팀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너희들은 해봐야 안 된다는 말도 들었다. 마음은 아팠지만 이해를 못 한 부분은 아니었다. 당시 타이거즈는 성과를 보여준 게 없었으니까. 이런 선입견 때문인지 연습 상대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연습 경기 상대를 구하지 못해 초반에는 중국 팀이나 챌린저스 코리아 소속 팀과 연습했다. 

하지만 성과를 보이자 모두가 바뀌었다. 롤챔스에서 5연승을 하자 다른 팀에서 먼저 연습 제의가 들어왔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다. 처음은 정말 힘들었지만, 정규 시즌 1위에 창단 시즌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2016 롤챔스 서머 이전 정점을 찍지 못해서 그렇지 못한 적은 없었다. 2년 동안 롤드컵 준우승과 4강, 롤챔스 준우승 2회에 우승 1회, 롤 케스파컵 우승.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나 역시 타이거즈에서 활동한 기간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나진에서 나올때는 주목받지 못했는데 타이거즈에서 나올때는 많은 주목을 받았고, 아프리카 프릭스에 입단하자 정말 많은 분이 축하해주셨다. 2년 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정리하자면 힘든 일도 많았지만, 좋은 일은 더 많았던 2년이었다.
 


많은 사람이 2016년 롤챔스 서머 우승을 차지한 후 눈물을 보였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이 많아서 그랬을 거라고 동료 선수들이 이야기했는데.

누구나 그렇겠지만, 경기에서 졌을 때 힘들었다. 졌다는 사실도 힘들었지만, 비난과 조롱을 버티기 힘들었다. 특히 나는 이상한 이유로 조롱받았다. 예를 들어 목에 생긴 피부병 같은 거. 팀 내부적으로도 힘든 일이 많았다. 프로게이머 생활은 단순히 게임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순간 SK텔레콤 T1에 막힌 일도 많았고, 그래서 나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다. '페이커를 잡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

그래도 2016 서머 시즌은 꼭 우승하고 싶었다.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고,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승하는 과정도 힘들었다. 우승하고 나자 힘들었던 시절 생각이 들며 눈물이 났다. "넌 항상 2등이야" 같은 이야기를 너무 들었다. 우승하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 현장 분위기까지 섞이자 나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더라. 눈물은 나지만 황홀하다고 해야 하나. 힘든 시절을 노력으로 극복해 결국 결실을 보는 순간이라 그랬던 거 같다.

특히나 비판이 본인한테 많이 쏠려서 더욱 특별한 우승이었던 거 같다. 본인은 본인의 플레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타이거즈 시절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중요한 순간 경기에서 지고 내가 상대보다 못해서 졌다는 평가를 받을 때마다 '내가 없었으면 이 팀이 더 잘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아플 정도로 자책도 많이 했다. 

결론은 반반이었다. 내가 있어서 이만큼 했지만, 내가 있어서 이만큼밖에 못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대신 그 당시 같이 팀에 융화돼서 할 수 있는 선수가 누가 있었을까.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누가 와도 힘들었을 자리라고 생각한다.

2016년에도 롤드컵에 진출했는데, 대회 중에 타이거즈 소속 선수들의 이적이 준비되고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팀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한 번도 없었다. 듣고 나니 웃음이 나더라. 오직 경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결과가 이리 돼서 다시 그 당시 이야기가 회자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롤드컵과 롤 케스파컵이 끝나고 팀 내부 사정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결국 팀을 나오기로 결정했다. 너무 늦게 이적을 준비하면 팀을 구하기 힘들 거로 생각해서 팀에서 이적을 위한 사전 교섭을 허락해줬다. 그리고는 모두 타이거즈와 계약이 끝났다.

IM과 나진에서는 1년씩 있었는데, 타이거즈에서는 2년 있었다. 그래서인지 팀원들과 작별하기 힘들었다. 언젠가 서로 각자의 길을 갈 거로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우리가 성적을 못 낸 것도 아닌데 헤어지게 되니 아쉬웠다.
 


타이거즈와 계약이 끝나고 처음에는 2017시즌 해외에서 활동하기 원했다고 들었다. 한국 잔류로 마음을 돌린 이유는 무엇인지.

연봉 문제도 있었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중국이든 북미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은 대한 욕심도 있었다. 같이 이적했으면 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 

한국에 남은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응원해준 한국 팬들을 잊지 못할 거 같아서였다. 해외에 가면 팬들을 잊지 못하고, 죄짓는 거 같은 느낌이었달까. 타이거즈와 계약이 끝나갈 무렵 팬들을 초청해서 일일 카페를 열었다. 팬들이 정말 많이 오셔서 사진도 찍고 선물도 주시며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기분도 좋고 죄송하기도 하더라.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서빙하는 동안 힘든 표정에 말도 얼마 못해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를 보러 와주셔서 좋아하시는 걸 보고 한국에 남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한국에 남아도 조건이 그리 나쁘지 않아 결국은 한국 잔류를 선택했다. 해외 진출을 생각했을 때 고민이 너무 많아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는데,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국 팀에 들어가면 환경에 적응할 필요도 없고, 계속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해외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도 좋지만, 성적이 잘 나오도록 정말 많이 신경 써주시는 한국 팬들의 모습도 좋았다. 

그래서 들어간 팀이 아프리카 프릭스다. 올 시즌 단순히 연봉 등의 조건을 떠나 자신의 커리어를 생각해 이적할 팀을 선택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계약 당시 아프리카 프릭스는 계약한 선수가 한 명도 없던 상황이었다.

한국 팀을 찾는 동안 (이)호진이 형에게 연락이 왔다.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선수를 구하는데, 혹시 생각이 있냐는 거였다. 다른 팀에서도 연락이 있었는데, 아프리카 프릭스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호진이 형을 통해 약속을 잡았다.

아프리카 프릭스 사무국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최연성 감독님이 나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훌륭한 성적을 거둔 정말 유명한 분이 쿠로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도 좋았다. 감독님을 만나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웃음). 굉장한 분이 나를 높게 평가하고 인정한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입단을 위해 사무국 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를 배려해주고 편의를 최대한 봐주시려는 점도 마음에 들어서 아프리카 프릭스 입단을 결정했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 개인 방송 제목으로도 살짝 미리 티도 냈다. 아프리카 프로 방송이라고. 나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어 입단 사실을 빨리 알리고 싶었다.
 


아프리카 프릭스 입단이 결정된 이후 다른 선수들도 하나씩 팀에 합류했다. 구성이 완료된 아프리카 프릭스라는 팀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던가.

내가 들어온 이후로 다른 선수들이 입단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나 말고 어떤 선수가 올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래서 나도 이번 시즌 성적에 대해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들어온 이후로 선수들이 하나씩 들어오는 걸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이 선수가 어떻게 우리 팀에 왔지?' 할 정도의 선수들이었다. 팀이 완성되는 보니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다들 열심히 하면 우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시즌 아프리카 프릭스 팀원들은 여섯 모두가 다른 팀에서 왔다. 하지만 정말 빨리 친해졌다. 팀원 간의 관계도 좋다. 경기 내 호흡은 아직 맞춰가는 중이지만, 노력하면 다른 팀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 같다. 2년 전의 타이거즈가 그랬다. 프로 생활을 처음 하는 (이)재하도 열심히 하려고 하고, 감독님과 코치님도 정말 열심이시다.

해외에 나가려던 본인의 생각을 바꾼 게 팬들이라고 했는데, 오프 시즌이라 경기가 없어 팬들에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인터뷰를 마치며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팬들은 나를 챙겨주고 아껴주고, 마치 엄마 같다고 해야 하나.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팬이 있어서 쿠로가 있고, 쿠로를 좋아해 주는 팬이 있어 대회가 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힘든 시절마다 팬들의 응원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고,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기에 이야기하면 정말 편하다. 나를 챙겨주고, 응원하고, 직접 와서 경기를 봐주시고, 여의치 않으면 온라인으로라도 챙겨 봐주는 모습을 지켜보니 나도 어느새 내 팬을 좋아하는 팬이 됐다.

IM시절부터 벌써 4년이 지났다. 팬들이 있어 계속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4년 동안 무엇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선수 생활을 하며 항상 팬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고, 경기에 이겨서 응원을 헛되게 하지 않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힘들 때나 좋을 때나 항상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새로 만난 선수들 모두 같이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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