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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박령우, 프로의 자신감과 명예를 말하다

박상진2016-10-25 01:47



큰 소식이 들린 후였지만 박령우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예전만큼 활기는 없는 연습실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스타크래프트2 연습을 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한국 e스포츠를 대표하던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그리고 팀들의 대결 무대였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는 2016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프로리그에 참여하는 팀들 역시 작별을 고했고, 임요환-최연성 등 한국 스타크래프트 무대의 대표 선수를 배출한 SK텔레콤 T1 역시 운영 종료를 알렸다.

그러나 박령우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생애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2016년 한 해를 바쁘게 달린 박령우는 WCS 글로벌 파이널이 열리는 블리즈컨 무대를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올해 참가한 대회 모두를 우승하고 싶었는데, 준우승을 두 번 했죠. 그게 좀 아쉬워요. 그래도 만족할만한 한 해였죠." 2016년 스타리그 시즌1 우승과 크로스파이널 시즌2 우승을 차지한 박령우는 예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박령우는 '노련함'을 말했다. 이전까지 자신감과 실력은 있었지만, 노련함이 더해지며 기량이 완성됐다는 자평이다.
 


그렇다. 2015년까지 박령우는 자신감이 실력보다 앞섰다. 그래서 주위에서 말도 많았다. 하지만 이 자신감은 박령우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던 무기였다. 스스로 2015년 과하다싶을 정도로 내세운 자신감은 '컨셉'이라고 말할 정도. 실력도 없는 선수가 자신감까지 없으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거 같아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자신감이 없던 때도 많았어요.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하잖아요? 결과가 좋지 않으니 속된 말로 '입만 턴다'라는 이야길 들었죠."

박령우는 프로였다. 비록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자신의 자신감을 모두의 앞에서 증명한 것. 공허의 유산이 출시되고 처음 열린 스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게임이 자신에게 맞았고, 그만큼 더 열심히 연습한 결과였다. 그리고 게임 운영에서도 확실한 모습을 보인 박령우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SKT 저그 최초 개인리그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GSL 박진영 해설은 박령우의 장점에 대해 "상대를 무조건 보고 맞춰가기에 지지 않는다"라는 평을 내렸다. 박령우 역시 이 평가에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령우가 상대를 보고 따라가게 된 데에는 최연성 감독의 힘이 컸다. '황제가 발견하고 괴물이 키운' 박령우지만, 그간 방송에서 최연성 감독보다는 임요환 전 감독 이야기가 더 나와서 조금 미안했다고 말했다. 

대군주 속도 업그레이드로 상대를 정찰할 정도로 상대를 어떻게든 보려고 하는 박령우의 습관은 최연성 감독이 들여준 것. "하도 자신감있게 게임을 하다 보니 상대 빌드도 안 보고 게임했어요. 그걸 보시고 최연성 감독님이 '게임 그렇게 하지 마라'고 하셨죠. 두 분 모두에게 배운 게 많지만, 최연성 감독님 알려주신 게 더 많아요. 물론 두 분 모두 좋아합니다(웃음)."
 


임요환-최연성에게 영향을 받은 박령우지만, 정작 선수가 되기 전 브루드워 시절 선수들의 경기는 거의 안 봤다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자신감이 넘쳐 다른 선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자신이 제일 잘하니 다른 사람의 경기를 볼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그가 프로게이머라는 확실한 목표를 세운 것은 스타크래프트2 출시 이후였다. 자신감에만 가득 차 있다가는 이도 저도 안될 거 같다는 생각에 들어간 클랜이 슬레이어스였다.

슬레이어스 클랜에서 활동한 박령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슬레이어스 팀에 합류했다. 그 시기 고등학교까지 자퇴한 박령우는 연습만 할 수 있었단 당시 환경이 좋았다고. 모두와 두루 잘 지냈던 박령우는 슬레이어스 해체 시기에도 다른 사람들의 사이가 좋지 않은가 보다는 생각을 한 채 연습에 빠졌다. 다행히 박령우는 슬레이어스에서 치른 데뷔전에서 승리를 거둔 박령우는 SKT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의 평소 생활과 연습 태도를 눈여겨본 임요환의 추천 덕이었다.

가족 같던 슬레이어스에 비해 SKT는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였다고. 박령우는 이런 SKT 분위기에서도 잘 적응해 팀 합류 이후 랭킹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SKT 저그들이 부진한 상황에서 프로리그에 데뷔해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임요환에서 최연성으로 감독이 바뀌었지만 박령우는 계속 성장했다. 박령우가 사용하는 독특한 '타링링(타락귀-저글링-맹독충)' 조합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
 


"이것도 최연성 감독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들은 게 시작이었어요. 남들 다 하는 거 하지 말고 다른 거도 해보라고. 그래서 생각한 게 타링링이었죠. 제가 맵도 잘 보고, 물량도 뮤링링(뮤탈리스크-저글링-맹독충)조합보다 잘 나와서 좋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잘 안 쓰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손에 익었기에 타링링을 썼는데, 처음에는 제가 교전에서 운이 좋아서 이긴 거라고만 생각했죠."

박령우가 두각을 드러내며 SKT 소속 첫 개인리그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어윤수가 네 번이나 결승에 도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며 '역시 티원 저그'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박령우는 여전히 자신 있었다. "그 이야기가 나쁜 이야기인줄 몰랐어요(웃음). 같이 활동한 저그 형들은 정말 잘하던 선수였거든요. 장난으로 (어)윤수형이 우승 못 해도 내가 티원 저그 최초로 우승하겠다고 말했는데, 그게 실제로 이뤄질 줄 몰랐죠."

박령우가 개인 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전 프로리그에서 먼저 가능성을 보였다. SKT T1이 2015년 프로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 "14년도에는 다들 이름 있던 선수들이라 경기력은 좋았지만 하나가 되기는 쉽지 않았죠. 하지만 15년도에는 팀이 가족 같은 분위기였어요. 서로 많이 도와주니 팀 전체적인 경기력도 자연히 올라갔죠."
 


올해 스타리그 시즌1에서 우승한 박령우는 이후 크로스파이널 시즌1과 스타리그 시즌2에서 연달아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박령우와 강민수의 스타리그 시즌2 결승은 저그 동족전이었지만, 다른 결승 못지않게 재미있었던 결승이었다. "(강)민수를 상대하면서 저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강민수는 정말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는 게 느껴졌어요. 힘들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겠다는 생각은 못 하고 제가 준비한 것만 하려다가 결국 졌죠."

하지만, 이것도 박령우에게 성장의 거름이 됐다. 스타리그 시즌2 결승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크로스파이널 시즌2 결승에서 박령우는 강민수를 상대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한 것. "우승도 우승이지만,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껴지는 날이었어요. 0대 2로 지고 있었고, 이번에도 준우승하나 했는데, 감독님이 처음 시작하는 거 처럼 부담 갖지 말라고 하셨죠. 경기 내에서 끌려가느니 지더라도 과감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니 게임이 잘 풀려서 역전할 수 있었어요."

개인 리그에서 질주하던 박령우였지만, 2016년 말 프로리그 종료라는 이슈와 팀 해체라는 일에서 박령우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팀 해단은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프로리그 종료는 이미 이야기가 나오던 일이지만, 팀이 없어지는 것은 박령우도 생각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박령우는 단호했다. "팀 해단의 발단이 된 프로리그 종료 원인 가운데 승부 조작이 있었죠. 화가 났어요. 인기는 다시 찾으면 되지만 신뢰 회복은 정말 힘들거든요. 실제로 2014년부터 다시 프로리그에 관중들이 늘었어요. 2015년 말까지도 많은 관중들이 찾아주셨는데, 연달아 터진 승부조작 때문에 관계자들과 경기에만 집중하는 선수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죠. 그렇게 이 판을 망친 사람들, 그리고 혹시나, 없다고 믿고 싶지만, 아직도 벌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 인터뷰를 보고 최소한의 자책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박령우는 스타크래프트2를 포기하지 않았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있고, 최소한 자신은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이면 팬들이 알아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자신의 생일을 챙겨준 팬들에게 감사의 의미에서라도 올해를 마무리하는 대회인 글로벌 파이널에서 우승하겠다는 게 박령우의 각오다. 상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승하면 모두가 주목하는 자리가 블리즈컨 무대이기 때문이다. 

박령우는 글로벌파이널에 앞서 열리는 글로벌 플레이오프에서 스타리그 결승1 상대였던 김대엽과 같은 조에 속했다. 스타리그 시즌 1에서는 박령우가 승리했지만, 크로스 파이널에서는 김대엽에게 우승을 넘겨줬다. 그래도 많이 이겼던 선수라 자신있다는 박령우는 김대엽과 친해지고 싶다는 바람이다. "많이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착한 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번 기회에 친해지고 싶어요. 실없는 농담을 자주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저도 그런 농담을 좋아해서 잘 맞을 거 같아요. 여태까지는 라이벌 팀이라 저 혼자 살짝 불편해서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요(웃음)."
 


글로벌파이널 우승 외에도 박령우는 이번 무대에서 목표가 있다. 바로 한국 스타크래프트가 아직 여전히 해외보다 한 수 위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 외국 선수가 안방에서 열린 케스파 컵에서 우승했지만, 자신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과 제대로 대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평소에는 만날 수 없던 해외 선수들과 대결도 기대된다는 게 박령우의 이야기다.

WCS 지역락이 풀려 많은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게 박령우의 희망이지만,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를 다 우승하면 된다는 박령우는 내년 목표 역시 한국 리그 우승이라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2가 있는 이상 계속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로 남겠다는 게 박령우의 프로게이머 인생의 목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이 있었죠. 그 와중에 팬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걱정됐어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했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팬들이 응원하는 동안은 계속 최선을 다해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응원하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프로게이머를 할 테니 응원해주시면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리그를 운영해주신 분들, 끝까지 저희를 도와주신 SK텔레콤 T1 사무국, 감독님과 코치님에게 감사인사 드립니다."
 


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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